오피니언 사외칼럼

[박성찬 칼럼] 스웨덴을 통해 본 사회적 협약의 정치

박성찬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

박성찬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협약을 통해 해결해야 할 갈등 사안이 증대하고 있다. 단지 노사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복지 수준과 조세부담, 공무원 연금개혁 등 당면한 현안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복지 관련 공약과 합리적 조세 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국민 대타협위원회’ 설치를 약속했다. 10월 3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여야는 사회적 대타협기구의 구성을 제안한 바 있다. 경제성장과 복지국가를 위해서는 사회적 대타협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도 유럽에서는 사회적 협약을 계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경제난과 실업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노사 대타협의 모범국가로, ‘국가 재건 프로그램’ 협약을 체결한 이후 연평균 6∼7%대 고성장을 이루며,‘유럽의 낙오자’에서 ‘켈틱 타이거’로 변모했다.

네덜란드는 노사 대타협으로 고용률을 크게 올린 ‘고용의 기적’으로 통하고, 사회적 협약으로 경제 성장과 복지 정책을 추진한 대표적 사례이다.

독일 ‘하르츠(Hartz) 개혁’은 대표적인 노동 개혁 성공 사례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여 고용율을 끌어올렸다.

스웨덴은 사회계급적 갈등이 가장 심각한 곳에서 ‘위로 부터의 협약’을 이끌어냄으로써, 경제성장과 복지국가로 성장한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아직까지 우리사회 노사 갈등의 심각성은 모두가 공감하고 있지만, 사회적 대타협에 대한 기대는 난망한 상태이다. 사회적 협약 추진과정에서, 조직 주체들은 이해집단의 기득권과 투쟁노선을 합리적으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하며, 조직 내부 압력과 집단이기주의를 극복할 지도력이 필요하다.

97년 노동법 개정과 98년 노사정위원회 경험은 합리적 대화와 설득구조가 마련되지 않고서는 어떤 사회협약도 만들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스웨덴은 1900년대 전후 유럽에서 사회계급적 갈등이 가장 첨예한 나라였다. 스웨덴 초기산업은 천연자원과 목재에 의존하여, 노동자들은 지리적으로 분산돼 노조가 발달하지 않았으나, 외국자본 유입된 이후 노조가 조직화되고 전투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1879년 대규모 노사분규가 발생한 이후 노사간 유혈충돌이 계속되었고, 1880년대에는 노동자 조직화가 급속히 진행돼 1898년 중앙노동단체로서 노동조합총연맹(LO)이 결성되었다.

사용자도 1902년 스웨덴사용자연맹(SAF)을 결성하여 대응하기 시작했다

1905년 전국단위 대규모파업이 발생해 8개월간 지속되었고 이결과로, 스웨덴 최초의 합의인 ‘12월 협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1909년 다시 6개월간 대규모 파업이 발생했고, 이후에도 노사 갈등과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스웨덴은 1차세계대전 이후 경제는 최악이었고, 보수와 사민주의자의 소모적 이념논쟁으로 인해 정치권의 사회 문제 해결능력은 상실한 상태였다.

1932년 사민당 정부 등장이 사회적 협약의 전환점이 되었다.

좌파정부 등장과 중재노력, 대공황 등 경제적 시련을 배경으로 노사간 협상이 진행될 수 있었다.

노사문제는 노사 당사자가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정부의 개입보다는 LO와 SAF의 주도로 진행했다.

스웨덴의 대표적 사회적 협약은 살쯔요바덴 협약과 렌-마이드너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살쯔요바덴 협약은 2년간 협상 끝에 노동시장위원회, 임금협상, 노동자 해고, 노동쟁의 등 4개 조항을 담은 합의문이다.

‘렌-마이드너 모델’은 경제목표를 완전 고용과 산업합리화, 인플레이션 억제 등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연대임금정책과 긴축 재정정책,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며, 핵심 정책은‘동일노동 동일임금’원칙의 연대임금정책이었다.

살쯔요바덴 협약은 스웨덴 대타협 모델이다.

협약은 노사의 상호 존중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용자는 노조를 교섭상대로 인정하고 노조는 사용자의 배타적 경영권을 인정했다. 사용자에게는 고용과 해고의 권한을 노동자에게는 파업과 단체교섭의 권한을 인정했다.

노사간 분쟁 해결과정을 협약에서 명문화했다. 기본 정신을 요약하면 ‘책임이 따르는 자유’(freedom under responsibility)로 규정할 수 있다. 노사 협상을 의무화하고, 파업이나 직장폐쇄는 협상이 실패한 경우에만 실행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노사분규 과정에 제3자 개입도 제한해 전적으로 노사 자율로 진행하도록 했으며, 노조가 단체교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경영자에게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사업장 복귀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다.

중앙 임금협상을 제도화 하고, 노사 중재 기구도 구성했다.

스웨덴 노사 대표는 임금협상 체계를 핵심 대표 조직인 LO와 SAF로 중앙 집중화하는데 합의했다. 노동위원회를 노사 대표 각각 3명으로 구성해, 노동관행과 분쟁에 대한 문제를 협의하였으며, 중재와 협상을 동시에 수행할 권한을 부여했다.

노조와 사용자 단체는 중앙 차원의 임금결정과 산업평화에 대해 책임을 지고, 정부는 적극적 노동정책을 통해 고용 창출과 복지 정책을 강화한다는 사회적 대타협을 실현하는데 합의한 것이다.

사회적 대타협의 과정에서는 좌파 정부의 중도 노선이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사민당은 노조 요구가 과격하면 여론으로부터 소외된다고 노조를 설득하여 사회적 대타협에 끌어들였다.

스웨덴 모델의 또하나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렌-마이드너 모델(Rehn-Meider Model)은 1952년 LO와 SAF가 협정에 의해 공식화한 협약으로, 경제 목표 달성을 위한 협약이라고 할 수 있다.

1940년대말 경기침체 지속되고, 사민주의 연합세력내 갈등과 농민당의 연정 이탈 등의 정치적 불안으로 스웨덴 사회경제가 다시 불안정한 상태에서 나온 사회적 협약이다.

사민당과 정부는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자제를 요청하게 되었고, 저임금 노동자들이 LO에 임금격차 해소를 요구하는 상황을 배경으로 협약을 추진하였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연대임금정책’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하에 산업별, 기업별 임금편차를 축소시켜 노동자 연대를 촉진시켰다.

고임금 부문의 임금인상을 자제시키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기업의 초과이윤은 보증연금기금으로 흡수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복지비용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경쟁력을 상실한 산업과 한계 기업에게는 자연 도태를 유도시키고, 산업전반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실업자 구제와 노동력의 안정적 공급에 초점을 두고, 완전고용 정책을 추진하였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 축소, 한계 기업 정리 효과, 노동자들을 저생산성 산업으로부터 성장산업으로 이동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책 수단으로는 실업보조, 고용확대, 장애인 고용촉진, 직업훈련, 직장 이동 보조금 등이 포함되었다.

스웨덴 사회적 협약은 1991년 SAF가 공식적 협약 붕괴를 선언할 때까지 유효한 협약이었으며,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사회적 대타협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완전고용을 보장하고, 빈부 격차를 해소하며, 사회복지를 통해 국민들에게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보장했다.

1950년대 이후에는 1~3% 수준의 저실업율을 유지해 국민 모두를 복지국가의 수혜자인 동시에 재원 조달자가 되게 하였다.

스웨덴식 복지사회는 누진세 강화와 광범위한 사회보장 등으로 경제적 평등을 실현하였다.

스웨덴 사회 대타협은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1936~1972년 동안 사민당이 연속 집권에 성공하면서, 안정적인 정치체제는 강력한 정책 추진력으로 작용했다.

사회적 협약이 사회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으로 작용하면서, 이념적 대결과 갈등으로 인한 국가적 낭비를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회적 대타협은 노사분규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최소화 하고, 적대적 노사관계나 전투적 노조의 등장을 예방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임금 격차 해소는 노동계급의 분열과 대립을 막고, 중앙 임금교섭 제도는 노조조직의 선명성 경쟁 자체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관련기사



스웨덴 모델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있고, 논란도 계속되었다.

살쯔요바덴 협약은 노조 자율성을 제약하며, 노동자에게 산업평화 유지책임을 전가시킨 것이라는 불만도 많았으며, 노동계 내부에서도 논쟁이 계속되었다.

대기업의 소유 집중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스웨덴식 모델은 연대임금제 실시로 축적된 사기업의 이윤을 전략적 산업에 투자하도록 하여, 오히려 소유구조 집중과 대규모 기업집단이 유지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또한 복지국가 모델은 필연적으로 공공부문 화이트 노동자 양산으로 귀결되었고, 이로 인해 생산직 노동자와 노-노 갈등을 야기하는 모순적 결과를 낳기도 했다.

최근 2006년, 2010년 총선에서 사민당이 패배하고 우파연합이 집권하면서, ‘고부담 고복지’복지제도에 대한 개혁이 진행되었다.

2005년에 상속세, 2008년에는 부유세 폐지, 국민의 조세부담률이 하향 조정되었다.

그러나 스웨덴식 복지제도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사회복지비 지출 비중이 높고, 노동시장정책과 복지제도가 일부 수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국가는 교육과 보육, 의료서비스도 무상에 가깝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스웨덴이 세계금융위기를 수월하게 극복하면서 복지국가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높은 경제성장률과 고용률, 국가채무와 재정적자의 건전성이 유지되고,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를 차지하였다.

최연혁 교수(스웨덴 예테보리대)는 “스웨덴은 영·미나 유럽대륙보다 사회안정적이며 세계 금융위기 사태와 같은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고 분석하고, “스웨덴의 이같은 성과가 시장주의적 개혁 덕분에 가능했다고 주장하지만, 기본적으로 ‘복지 체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사회적 협약이 경제성장과 국민대통합을 실현하는 지름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스웨덴 모델이 한국 상황에 적용 가능한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낮은 노조조직률 등을 지적하며, 하향식 스웨덴 모델은 현실에 맞지 않다고 한다.

서구의 작은 나라의 성공 사례는 한국에 맞지 않다거라, 수출 중심의 개방경제는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등의 주장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최근 사회적 대타협 논의는 복지와 증세문제, 노동시장 개혁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고, 공무원 연금 개혁을 위한 사회대타협 기구도 논의되고 있다.

노-사-정 각 경제 주체들의 사회적 대타협이 선행되지 않으면, 어떤 실효성 있는 정책도 실행되기 어려운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 사회 대타협 경험은 김영삼정부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 김대중정부의 노사정위원회에 불과하고, 성과도 미미하다.

1996년 김영삼정부의 ‘신노사관계 구상’선언에 따라, 노사관계 개혁에 관한 포괄적인 논의와 노동법 개정 활동이 진행되었다.

노사공익 9인 위원으로 구성한 노동법 개정 작업 추진과정에서 민노총이 불참을 선언했고, 1996년말 여당 단독처리 되었으나, 야당의 반발과 노동계의 파업이 진행돼 재차 여야간 타협을 거쳐서 1997년 3월에 재개정되었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는 노-사-정 및 정당이 참여한 노사정위원회는 IMF 관리체제 하에서 합리적인 고통분담을 목적으로 구성되었다.

1기 노사정위원회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간 공정한 고통분담에 관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실천방안으로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실업대책’ 및 ‘사회보장제도 확충’, ‘노동기본권 보장’, ‘노동시장의 유연성’등 노-사-정 대타협을 도출했다.

그러나 98년 6월 금융감독위원회의 퇴출기업 발표 및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계획 발표 등이 잇따르자 한국노총과 민노총은 7월에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했고, 유명무실한 상태가 되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사회적 협약을 통해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첨예한 이념대립으로 갈등만 노출하고 있어 중도적 공론과 타협의 입지가 매우 축소돼 있고, 국가적 과제에 대한 실용적 접근이 힘든 상황이다.

보수적 성격을 띤 정부가 사회적 협약에 필요한 정치사회적 여건을 조성할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중도 우파 정부 주도의 사회적 대타협 사례는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경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네덜란드 중도우파인 루버스 내각 바세나르협약을 주도했고, 오스트리아에서도 중도우파와 중도좌파의 대연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집권 세력의 이념 성향보다는 사회적 대타협에 대한 장기적 전략과 실행의지, 사회적 신뢰 구축 등이 더욱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의 사회적 협약 추진과정에서 대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스웨덴 산업구조는 한국과 유사한 측면이 많은데, 수출 대기업 중심으로 짜여 있고, 발렌베리 가문을 대표로 하는 재벌들이 주요 대기업들에 대한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강력한 사민주의 정당과 노조가 주도하는 국가에서, 재벌과 같은 기업지배구조를 용인해온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협약 과정에서 국민들은 재벌들의 소유권을 보장한 대신, 고율의 누진세와 투자, 고용 등을 보장받는 방안에 합의했다.

오너 중심 경영의 장점을 기업경쟁력 제고에 활용하고, 그 성과를 보편주의적 복지국가 재원으로 사용했다는 점은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창업 후 150년 동안 6대째 오너경영을 이어온 발렌베리 가문은, 1938년 차등의결권을 보장 받는 대신 85%에 달하는 누진소득세를 받아들였고, 투자와 고용, 부가가치 창출에 앞장서 국민경제에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차등의결권 주식이란 다른 주식에 비해 의결권을 많이 갖는 대신 배당 등 경제적 이익은 제한하는 제도이다

실제 발렌베리가는 지주회사인 인베스터 지분의 22%만 갖고 있지만 의결권은 47%를 행사하고 있다.

발렌베리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 이면에는 철저한 경영 전통이 자리잡고 있다. ‘소유권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발렌베리가의 전통이 있고, 기업들의 철저한 독립경영과 전문경영인에게 일임하는 원칙 등이 있었다.

세습경영에도 불구하고 재산 상속이나 증여에 관한 문제가 한번도 없었다는 점 등 발렌베리 가문의 사회적 책임감과 투명한 경영윤리가 있었다.

사회적 대타협을 위해서는 분명한 목표와 협약 당사자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노동계는 노동 유연성과 임금 억제 방안을, 사용자는 고용확대 및 재원 부담 증대 방안을, 정부는 복지 확대 및 실업 대책 등 명확한 정책 목표를 갖고 접근해야 한다.

어느 일방의 양보와 희생을 요구하는 대타협은 성공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협약 당사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계기로 작용한다.

정부 정책이 친기업적이고 노동계 양보를 전제로 대타협을 추진하고 있다고 인식되면 사회적 대타협은 불가능하게 되며,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상실하고 투쟁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대타협은 국민 공감대 형성이 우선 과제이다.

스웨덴의 대타협은 노-사-정의 신뢰,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의식과 처신 등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 사회 미래에 대한 장기적 전망과 각 주체들의 사회적 합의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사회적 협약은 국민대통합의 용광로가 될 것이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사회복지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정부와 기업, 노동자와 시민사회의 갈등을 해소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사회적 협약을 통해 상호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 /새누리당 부설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