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회계법인, PF도 잘 모르면서 사업장 평가

■회계법인은 저축銀 사태의 종범<br>과당경쟁으로 피감업체와 적당한 선에서 타협 예사<br>감독당국, 부실감사 회계법인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br>허위 재무제표 믿은 고객만 후순위채등 수천억 피해


"(회계법인은) 솔직히 PF도 잘 모르면서 사업장 평가를 하더군요."(A저축은행장) 회계법인들의 저축은행에 대한 부실 감사보고서는 저축은행 문제의 핵심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한 이해부족과 업체 간 과당경쟁, 감독당국의 경미한 처벌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회계법인 측은 '정보제공의 한계'를 강조하지만 감독당국에 이어 회계법인의 생명인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회계법인의 신뢰도(재무제표)만 믿고 해당 저축은행에 예금하거나 투자를 한 고객들만 수천억원을 날리게 됐다. ◇회계법인 부동산 PF 잘 몰라=익명을 요구한 한 저축은행장은 "자산관리공사에 부실 PF를 매각하면서 사업장에 대한 평가를 회계법인에 맡겼었는데 PF의 성격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결국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를 짓거나 마구잡이로 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회계법인이 부동산 PF의 구조나 사업성 평가 등에 대한 관련 지식이 부족해 제대로 된 감사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저축은행 부실문제의 핵심인 PF에 대한 성격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감사보고서가 제대로 될 리 있겠느냐는 것이다. 저축은행의 PF는 은행권과 달리 땅 매입 자금용으로 나가는 신용대출 성격이 짙다. 또 저축은행들은 부실이 나면 이자를 추가로 대출해주거나 다른 사람의 명의로 여신을 해 부실을 숨기는 사례가 많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과정에 수시로 분식회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달 29일 부산저축은행 계열사의 상세검사 때도 이 같은 부실이 드러나자 부산저축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5.13%에서 -50.29%, 부산2는 6%에서 -43.35%로 급락했다. 저축은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저축은행 PF가 문제가 되자 회계법인들이 감사보고서를 낼 때 이것저것 따지기는 했지만 결국 영업정지를 당한 저축은행을 포함해 대부분의 부실 저축은행은 적정의견을 받았다"며 "이럴 거면 뭐하러 외부감사를 받느냐"고 밝혔다. ◇과당경쟁 원인, 처벌 강화해야=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도의적으로는 문제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상 저축은행 대주주가 마음먹고 저지른 비리를 우리가 찾아내기는 어렵다"고 실토했다. 이 말에는 감독당국도 똑같이 당하지 않았느냐는 불만도 담겨있다. 그는 대주주가 의도적으로 조작하면 회계법인이 이를 잡아내기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고까지 해명한다. 실제로 회계법인들은 저축은행을 감사할 때 경영진에게 제공정보가 맞다는 확인서를 받아낸다. 그만큼 회계법인의 감사능력에 대해 스스로도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다른 분석을 내놓는다. 회계법인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빅4'를 제외한 나머지 중소 회계법인은 '을'의 입장에서 피감업체와 적당히 타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3월 말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상장법인 중 삼일∙안진∙삼성∙한영회계법인이 맡은 계약 건수 비율은 전체의 55%에 달했다. 중소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수임이 가능한 셈이다. 한 금융권의 관계자는 "과당경쟁 때문에 회계법인들이 업계의 요구에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감독당국의 회계법인에 대한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국은 부실 감사를 한 회계법인에 영업정지, 손해배상공동기금적립, 해당 업체 감사업무 제한 등의 징계를 내린다. 이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회계법인에 대한 처벌 결과를 발표해도 주로 이를 위반한 업체 위주로 발표되고 언론에서도 회계법인보다는 분식회계 등을 저지른 업체가 집중 보도된다"며 "당국이 처벌수위를 보다 강화해 부실 감사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애꿎은 고객만 봉=회계법인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결국 허위 재무제표 때문에 일반 고객들만 피해를 봤다. 올해 들어 영업정지를 당한 8개 저축은행의 5,000만원 이상 예금액은 2,537억원, 후순위채는 1,514억원에 달한다. 회계법인이 외부에서 법인을 감시한다는 의무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생긴 피해다.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감독당국에 있지만 회계법인도 책임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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