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51> 세밑의 의미

오늘은 2014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숨 가쁘게 달려온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에는 좀 더 여유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전에는 한 해가 갈 때마다 새해 달력을 선물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최근까지는 경영자들도 달력 선물을 주고 받았습니다. 종교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의 가톨릭 교회와 성공회에서는 교회의 절기와 행사 시기가 적혀 있는 ‘교회력’을 선물합니다. 불교계에서도 석가탄신일, 우란분재, 백중일과 같은 중요한 날짜 중심으로 표기된 달력을 사찰 별로 발행하곤 합니다.


과거에는 날짜 개념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역법’(曆法)이란 말이 있듯이 한 해의 날 수를 계산하고 그에 맞게 국가의 일정이나 농사 시기, 전쟁 동원기 등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 정책적 사안 중 하나였습니다. 그 때문에 통치자들이 직접 달력 제정에 관여했습니다. 서양에서는 프톨레마이오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레고리우스 13세 등이 역법 제정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동양에서는 중국의 경우 왕조가 바뀔 때마다 역법을 개정했습니다. 고대 은나라 시절에는 태양력을 사용하여 1년을 거의 365.25일로 보았다는 기록이 있고, 한나라 이후부터는 달이 차고 기우는 삭망주기를 기준으로 태음력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재미있게도 역법 계산의 고도화 수준은 중국이 서양에 비해 약 200년이 빨랐다고 합니다. 동양 사람들은 일찍부터 날짜의 과학이 얼마나 국정 운영에 중요한지 깨닫고 실천에 옮겼던 것이죠. 우리나라 역시도 중국의 역법과 환경 변화를 참고하여 우수한 날짜 계산법을 여럿 만들어 냈습니다. 이처럼 한 해가 몇 일이며 달 수를 어떻게 두는 것이 정확한가에 대해서도 고민한 역사가 오래되었으니, 달력이란 상품이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여질 법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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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지막 날도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좋은 일보다는 악재가 더 많은 한 해였습니다. 큰 사건, 사고만 달력에 적었다고 하더라도 빽빽하게 채웠을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국회, 정부, 기업도 너 나 할 것 없이 힘든 일들로 바빴습니다. 국회의 경우에는 회기 내에 예산을 처리하고 개정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정부는 그 결정을 내려받아 각종 법률에 따른 기본계획과 실행계획을 정비하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기업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IT 기업은 매 분기마다 하락하는 재무성과와 실적 개선 요구사항 때문에 우울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당장 희망을 발견할 수는 없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가거나 조직 규모를 축소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비상 경영에 돌입한 경우도 많습니다. 해당 계열사 대표가 ‘언제까지 실적이 나아지지 않으면 정리를 감수 하겠습니다’ 는 식으로 기한을 연장하는데 성공하더라도 결국 시한부 선고에 그치고 맙니다. 날짜와 시간은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 갑니다. 날이 갈수록 의사결정자는 자신의 구상을 뒤늦게 따라오는 조직이 마음에 안들 것이고, 부하들 입장에서는 공감과 소통의 미덕을 잃어버린 윗사람이 미워질 것입니다. 이처럼 날짜와 시간에 대한 인식이 저마다 다른 상황에서 갈등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시간 압박이 창의성이 중요한 원천이라는 사회심리학 연구 결과도 있지만, 막상 조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당사자는 숨 막히고 답답한 감정을 제일 먼저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2015년이 돼도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며, 날짜가 너무 많이 지나갔다며 상대방을 다그치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끌려 오기를 원할 겁니다. 어반 스피릿(Urban spirit)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심에서 분 단위로 일상을 쪼개어 살아가면서 바쁘게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를 통칭한 말입니다. 조급함, 데드라인 압박으로 인한 스트레스, 일 중독 같은 것들이 이 개념과 유사한 지표라고 이야기하는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원래 달력과 날짜는 사람을 배려해서 만든 것인데, 이용자 스스로가 그것으로 강박증과 피로함을 느끼고 있으니, ‘날짜의 역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기한’에 쫓겨 숨 가쁘게 일을 처리하느냐, 여유 있게 마무리하느냐는 결국 날짜를 어떻게 쪼개고 일을 배분할 것인가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한을 수용하는 사람의 태도 못지 않게 기한을 설정하는 사람의 결정방식 역시 매우 중요하죠. 상대방의 작업 속도를 고려한 주기, 과도하지 않은 업무분담으로 서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2015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왜 빨리 하지 못하느냐’는 다그침보다 ‘시간을 줄 테니 제대로 일하라’고 격려하는 문화로 산출물의 질과 삶의 여유 모두 한층 업그레이드 될 거라 기대하면서.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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