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심층진단] 정부 90% 가정했는데… 뒤통수 맞은꼴

■ 한중FTA 개방품목 50%로 줄이나<br>車 등 민감품목 빼고 서비스·투자도 예외<br>양측 의견 차이 커 협상 많이 느려질 듯<br>중에 휘둘리지 않게 속내부터 파악해야

박태호(가운데)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2월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한중 FTA관련 농어민 단체장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경제DB


뒤통수 때린 중국에 발칵 뒤집힌 한국
[심층진단] 정부 90% 가정했는데… 뒤통수 맞은꼴■ 한중FTA 개방품목 50%로 줄이나車 등 민감품목 빼고 서비스·투자도 예외양측 의견 차이 커 협상 많이 느려질 듯중에 휘둘리지 않게 속내부터 파악해야

김영필기자 susopa@sed.co.kr














박태호(가운데)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2월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한중 FTA관련 농어민 단체장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경제DB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차 협상을 앞둔 지난 6월. 통상교섭본부ㆍ기획재정부ㆍ지식경제부ㆍ농림수산식품부 등 관계 부처는 함께 모여 협상 대비를 했다. 우리 측의 안과 협상내용은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지만 일단 우리의 패를 만들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중국이 높은 수준의 FTA를 원한다고 보고 90% 품목에 대해 10년 내 관세철폐를 가정했다. 하지만 2차 협상에 들어가보니 괜한 일을 한 꼴이 됐다. 90%는커녕 50%라는 '충격적' 숫자까지 중국 측에서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중국과의 협상을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처지에 빠졌다. 8월 말 중국에서 열릴 예정인 3차 협상에서는 중국의 속내부터 따져봐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중국이 너무 소극적으로 나와 협상단이 충격을 받았다"며 "개방품목 수를 따지기 전에 개방 수준에 대한 의견교환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이 같은 협상 방향은 FTA가 체결되더라도 '빈껍데기 FTA'라는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국이 자동차ㆍ석유화학 등 민감품목을 모두 제외하고 우리나라는 농산물ㆍ생활용품 등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업종을 개방목록에서 모두 뺀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개방품목도 10년 이상 장기로 개방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개방품목의 경우에도 관세를 10년 이상 길게 가져가서 부담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고 있다"며 "지금 당장은 낮은 수준에서 출발하더라도 예를 들어 20년 뒤 높은 수준이 되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게 중국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는 서비스ㆍ투자 분야에서 더하다. 개방품목 수가 대폭 줄어드는 상황에서 서비스ㆍ투자 분야의 중국 개방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한중 FTA는 정치적인 의미밖에 남지 않는다. 경제적인 피해는 최대한 줄이면서 극동아시아에서 미국을 견제하려는 중국의 뜻에만 부합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높은 수준의 FTA를 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맺은 FTA들이 그랬고 중국과의 FTA도 높은 수준으로 해 실질적인 효과를 내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하지만 양측 간 이견이 너무 큰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한중 FTA는 협상진척 속도가 크게 느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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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통상부는 아직 상황 판단을 하기에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협상내용이라는 것은 진행 중에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또 품목 수만으로 개방품목을 정하자는 중국의 요구는 FTA 협상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게 외교부 판단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이 50% 얘기를 꺼냈는지는 협상내용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도 "중국이 맺은 FTA에서 품목 수만으로 개방 수준을 정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이 일부 무리한 얘기를 하는 것은 협상의 기술로 보면 된다"며 "중국과의 FTA 협상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다음달 말에 있을 3차 협상에서도 양국 간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중국으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당한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최대한 중국의 개방을 이끌어내기 위해 공격적인 협상을 벌여야 하고 중국은 상황을 보아가며 개방 수준을 조절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품개방은 물론 서비스ㆍ투자ㆍ비관세장벽(TBT) 분야의 중국 측 양보를 얻어내야 하는 우리나라 정부 입장에서는 힘겨운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정부가 중국과의 FTA 협상에 임하면서 중국의 복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협상을 밀어붙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등에서 공식적으로는 한중 FTA를 서두를 생각이 없다고 밝혔지만 실무 차원에서는 협상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비판이 정부 내에서 나올 정도였다. 일각에서는 외교 라인 쪽에서 중국 정부가 높은 수준의 FTA를 원하고 있다고 오판한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중국의 협상기술은 미국보다도 높은데 이번에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며 "중국이 한중 FTA에 어떤 속셈을 갖고 있는지부터 다시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이 대외 협상을 할 때보면 처음 꺼냈던 말이 나중에 달라질 때가 상당히 많다"며 "중국 측의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정보 채널과 충분한 협상전략이 필수"라고 조언했다.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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