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있다. 최근 방송계를 두고 이르는 말인 듯하다. 지상파 방송계와 각종 유료방송계는 재송신료를 놓고 몇 년째 법정분쟁을 벌이고 있고 케이블TVㆍ위성방송ㆍ인터넷TV(IPTV) 등 유료방송계 내에서는 저가 출혈경쟁으로 인한 상호 비방에 정열을 낭비하고 있다. 방송계의 복잡한 갈등 구도는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로 시장참여자들의 불안감이 극도에 달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기술이 이렇게 빨리 변할 줄 몰랐다. 과거 지상파 방송사 주도로 이뤄진 방송신호 전송은 케이블ㆍ인터넷ㆍ모바일 등 수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나자 업종의 경계 마저 무너졌다. 포화상태의 방송 시장에서 고객을 뺏어와야 하는 단계에 이르니 출혈 저가경쟁과 법적 분쟁은 예고된 수순이다. 국내 유료방송의 역사는 15년에 불과하다. 지난 1995년 출범한 케이블TV는 다채널 다콘텐츠라는 초기 목표보다 장기간 난시청 지역의 지상파TV 재송신 역할에 무게가 더 실렸다. 2002년 출범한 위성방송도 케이블ㆍ지상파가 닿지 않는 산간벽지에 지상파TV의 재송신이 장점으로 부각됐다. 여기에 IPTV를 앞세운 통신사업자와 종합편성채널을 앞세운 언론사까지 뛰어들어 방송산업은 삽시간에 레드오션으로 변했다. 플랫폼 간 싸움에 묻혀버린 중요한 게 있다. 방송 콘텐츠 산업이다. 과거에 비해 채널은 엄청 늘었지만 볼만한 자체제작 콘텐츠는 '가뭄에 콩 나듯'한다. 국내 방송계가 플랫폼 확장에 주력하는 동안 월트디즈니ㆍ폭스TV 등 해외 콘텐츠 강자들이 진출해 영화ㆍ애니메이션 등 선호도 높은 주문자비디오(VOD)서비스로 국내 시장을 넘보고 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이들의 사업은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여 방송시장의 안방을 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높다. 방송은 문화산업 중에서도 파급력이 크다. 미국 정신을 담은 영화ㆍ드라마가 미국정부의 정책 홍보에 일등효자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동남아를 넘어 유럽ㆍ미국에서 들려오는 대중음악 '한류(韓流)'열풍은 한국 방송 콘텐츠의 해외 진출 확대가 멀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오는 25일 오픈 하는 '디지털방송 콘텐츠 지원센터'는 중소규모의 콘텐츠 제작업체들이 제작부터 편집ㆍ송출ㆍ유통에 이르기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해 준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플랫폼 간의 눈살 찌푸리는 분쟁 소식 대신 우리가 제작한 콘텐츠가 유럽ㆍ미국에서 대박을 터뜨렸다는 소식을 하루 빨리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