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청개구리


시슬리코리아_홍병의 (3)


지난해 이맘때 내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이었던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어느 누구에게나 아버지는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이겠지만 내게 아버지는 누구보다 더 각별했다. 형에게는 장남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살가운 표현은 오히려 아끼셨던 것 같고 둘째인 나는 편히 곁에 두고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 특히 인생을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쓴 말씀도 많이 해주셨다. 가족이 인생의 전부였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늘 식구들에 대한 염려와 넘치는 사랑을 보여주셨다. 그런 아버지를, 우리는 번듯한 묏자리 없이 강원도 어느 산 정상에 모셨다. 당대발복(當代發福)이라고 해 돌아가신 부모의 묘를 잘 모시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던 옛 어르신들에게는 경을 칠 노릇일지도 모른다.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아버지는 자식을 앞세워 산에 오르셨다. 그 산은 아무 연고도 없고 단지 주말이면 부모님을 모시고 우리가 즐겨 찾던 산이었다. 돌아갈 날이 다가온다는 것을 직감하신 까닭인지 산에 오르셔서 당신께서 잠들 장소까지 말씀해주셨다. 우리는 결국 묘를 쓰는 대신 아버지의 유언대로 그 산에 뿌려드렸다.


지난주 말 1주기를 앞두고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가 잠들어계신 곳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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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500m, 일 년 중 꽃피는 기간은 잠깐이고 항상 바람 많고 추운 곳에서 아버님을 뵙고 내려오는 자식의 마음은 늘 무겁고 불효자가 된 기분이다.

아버지를 뿌리고 온 바람 서늘한 산 위에 앉아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굳이 유언이라고까지 하며 그렇게 당부하실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두 아들 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잘 모실 수 있는 능력 정도는 충분히 되고 양지바른 곳에 모셔 깨끗한 잔디에 멋진 비석도 세우고 가족과 같이 성묘도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아버지 또한 그런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으셨을까. 그렇게 하신 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과 배려였을 것이다.

어릴 때 들었던 청개구리 이야기가 문득 생각난다. 시종 엄마 말에는 반대로 하던 청개구리가 마지막 엄마의 유언은 그대로 따라 물가에 죽은 어미를 묻고 비 오는 날이면 무덤이 떠내려갈까 슬피 울었다 했던가. 나는 평생 아버지 말씀을 크게 거역해본 적이 없었지만 마지막 아버지 유언만큼은 오히려 청개구리가 돼 듣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정말 잠깐 앉아 있기도 힘든 차디찬 바람이 많은 돌투성이 땅에 아버지가 잠들어 있다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손녀의 대학 입시 준비에 방해가 될까 끝끝내 팔순 잔치도 마다하셨던 아버지, 무뚝뚝하고 살갑지 않은 성격이었지만 어머니에게만큼은 누구보다 애틋함을 보이셨던 아버지, 유학 시절 매주 편지를 손수 적어 보내셨던 아버지, 그렇게 가족에게 각별하셨던 아버지였기에 가시는 순간까지 자식에게 무거운 짐을 남기지 않으려 혼자 다 지고 가자 하셨을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 나름의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내게도 자식이 있지만 나는 아직 아버지만큼 할 자신이 없다. 자식의 일보다 내 일이 앞설 때가 종종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시는 순간까지 자식을 배려했던 아버지의 사랑이 오늘따라 더 가슴에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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