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5월 27일] '원망하지 말라' 고인 뜻 받들자

박용천(한양대 의대 교수·신경정신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세계에도 충격을 줄 만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충격의 강도는 더 심한데 이러한 정신적 충격은 놀라움ㆍ부정ㆍ분노ㆍ우울ㆍ수용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심리를 애도반응이라고 하는데 그 기간에는 슬픔ㆍ불면ㆍ식욕감퇴ㆍ체중감소 등의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애도의 기간은 주위에서 지지해주는 정도에 따라 좌우된다. 대개는 2개월 이내에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데 그 이상 지속되면 문제가 된다. 정신적 충격서 빨리 벗어나야
그 중 대표적인 증상으로 우울증이 발생할 수 있는데 잘 알려져 있듯이 우울증이 지속되면 일상생활의 지속이 어려워지고 극단적인 상황까지 갈 수 있으니 주변에서 조기 발견을 해 치료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평소 직접 관련이 없었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급성 스트레스 반응이나 좀 더 심하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증상을 보일 수 있다. 예를 들면 같은 충격을 받아도 잠시 흔들리다 원위치를 찾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점점 더 악화되는 사람도 있다. 그 이유는 어린 시절이나 과거에 유사한 경험을 했을 때 주위에서 잘 보살펴주고 위로해줘 쉽게 회복을 했는지, 아니면 과거의 고통이 소화되지 못하고 응어리져 있었는지에 따라 다르다. 만약 과거에 유사한 경험을 떠올렸을 때 그 당시의 고통스러운 감정이 그대로 느껴져 외롭고 쓸쓸하거나 분노와 억울함, 절망과 좌절 등이 떠오르거나 신체적으로 그 당시에 경험했던 현상들이 나타나 소화가 안 되고 가슴이 뛰거나 숨이 답답하며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러워 생활에 불편한 증상이 생긴다면 자신의 평소 잠복해 있던 취약점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도졌다고 봐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과거와 현재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 즉 지금 고통은 어느 정도이고 과거의 고통은 어느 정도였는지 분리해서 생각하면 좀 더 쉽게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다. 또한 가까웠던 사람일수록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감때문에 죄책감이 크겠지만 자살은 아무리 방지가 잘 돼 있는 병원에서조차도 100%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소위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누구나 갖게 되지만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자책감이 너무 지나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까운 사람들 중 특히 노 전 대통령을 좋아하고 존경해 따르던 사람들은 평소 자신과 노 전 대통령을 동일시해 노 전 대통령과 같이 되기 위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이런 분들은 쉽게 노 전 대통령의 행동을 따라 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마지막 행동까지 따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유서에서도 나타났듯이 고인의 마지막 당부는 ‘슬퍼하지 말고 미안해 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고인은 이미 미움과 분노의 차원을 벗어난 듯하다. 살아남은 자들이 어떻게 행동하기를 고인이 바랄지 생각해볼 문제다. 고인은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돼 있다. 다만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여태까지 우리가 가져왔던 우리의 감정을 돌이켜보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이러한 비극을 승화해 국민화합을 이루는 것이 고인에 대한 살아남은 자들의 책임일 것이다. 비극 승화해 국민화합 이루길
마지막으로 자살에 대해 지금까지보다 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행정적인 뒷받침도 필요하겠지만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우선돼야 한다. 봉사차원에서 실시되던 전문가들의 활동도 좀 더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해 최근 일컬어지는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도 이번 일을 계기로 없애야겠다. 자살은 100% 방지할 수는 없지만 의학적ㆍ사회적ㆍ행정적 개입을 하면 빈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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