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들이 혁신돼야 할 대상에서 선진화돼야 할 대상으로 바뀌었다. 지난 참여정부 공기업정책의 핵심은 혁신이었다. 정부를 비롯한 공공부문에 대해서는 강한 혁신의지와 함께 다양한 혁신프로그램들이 추진됐다. 특히 규모가 큰 공기업들이 혁신바람의 집중적인 타킷이 됐다. 비효율과 방만경영 등으로 늘 비난의 화살을 맞는 공기업을 혁신을 통해 효율성과 성과를 높여보자는 의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 같은 혁신 노력은 나름대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교수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혁신평가단이 지난 2006년 현재 219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혁신수준을 평가한 결과를 보면 대상기관의 68%가 혁신성과 창출이 가시화되는 4단계 이상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 기업규모가 큰 정부투자기관을 포함한 시장형 공기업의 경우 대부분이 혁신수준의 최고 단계인 6단계로 평가됐다. 혁신활동이 체질화되고 지속적으로 성과를 창출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이를 혁신활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절하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저명교수를 비롯한 사계 전문가 수십명이 참여해 15개분야 30여개 항목에 이르는 정교한 평가모델을 통해 나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혁신평가 외에도 이중, 삼중의 감시와 감독장치가 작동된다. 공익성의 명분 때문에 공기업이 생산하는 제품 또는 서비스의 가격은 대부분 정부의 엄격한 통제하에 있다. 원가가 올라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해도 정부가 승인하지 않으면 가격을 올릴 수 없다. 한전을 예로 들면 석탄가격이 치솟아 적자가 나도 전기료를 올리지 못한다. 임금이나 정원 역시 정부의 엄격한 가이드라인이 적용된다. 이익이 많아 났다고 해서 마음대로 월급을 올리고 인원을 늘리지 못하게 돼 있다. 이렇게 보면 경영의 자율성은 극히 제한된 부분에 국한돼 있는 셈이다.
공기업들이 가장 신경 쓰는 감시장치는 매년 실시되는 경영평가다. 사업의 특성, 여건변화, 기업규모등에 관계없이 일률적인 잣대에 의해 평가를 받고 순위가 매겨진다. 이 순위에 따라 기업이미지는 물론 급여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총력을 기울인다. 주무부처의 업무감독, 감사원 감사, 국회도 항상 신경 써야 하는 막강한 감독관들이다. 공익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업과 관련해 관련지역 주민ㆍ시민단체 등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과 배려를 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그러나 공기업들은 여기서 안주할 수 없게 됐다. 선진화라는 또 다른 변화의 바람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작은 정부’의 틀에서 보면 선진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민영화ㆍ통폐합ㆍ기능조정과 다운사이징 등 보다 강력한 방법이 구사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공기업의 비리와 도덕적 해이 등이 집중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선진화의 명분 쌓기 또는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나온다. 이처럼 불안감이 커지자 겉으로는 낙하산을 비난하면서도 내심 실세를 은근히 바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선진화가 공기업의 모습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알 수 없다. 여건과 상황이 바뀌면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들을 마치 영화 제목처럼 ‘공공의 적’인 양 통째로 매도하거나 마녀 취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비리와 도덕적 해이는 척결돼야 하지만 똑같은 잣대를 정부ㆍ자치단체ㆍ정치권 등에 들이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의문을 가져볼 필요도 있다. 공익과 효율의 조화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 없는 우량 공기업들이 적지않다. 민간자본이 축적되지 못한 상태에서 급속한 산업화와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에 기여한 공기업의 역할을 과소평가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