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아파트가 로또인 사회

많은 국민을 기대와 실망, 환희와 낙담의 난장으로 몰아넣었던 판교 신도시 1차 동시분양이 지난 4일 당첨자 발표를 끝으로 마감됐다. 무려 46만여개의 청약통장을 먼지 쌓인 장롱 밖으로 끌어낸 데는 ‘판교 로또’라는 언론의 수사가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던 것 같다. 상당수가 이 말에 혹해 철저한 자금마련 계획도 없이 ‘묻지마 청약’에 나서기도 했다. 로또 당첨의 기쁨도 잠시, 계약금 마련 고민에 밤잠을 설치는 이도 적지않다고 한다. 대체 로또라는 게 무언가. 단돈 몇 천원으로 일확천금의 횡재, 인생역전의 드라마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준 서민들의 꿈이다. 바꿔 말하면 로또에 기대지 않고는 성실하게 저축해 살아가기 힘든 우리 사회 양극화 현상의 상징이기도 하다. 판교에 로또의 지위를 부여한 것은 언론이었지만 이 같은 수사가 별 거부감 없이 먹혀들었던 데는 뒤틀릴 대로 뒤틀린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억’ 단위로 오른다는 서울 강남의 아파트들을 보며 서민들이 느끼는 ‘억한’ 감정은 그리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 봉급쟁이가 뼈빠지게 일해 한푼 두푼 아껴 모아도 집값이나 아파트 분양가가 오르는 속도를 쫓아가기 버겁다. 극소수의 국민이 부동산을 통해 배불리는 동안 서민들의 생활수준은 점점 뒷걸음질치고 있다. 정부가 강남 잡기에 혈안이 된 근본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강남에 집을 사면 돈을 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잘 알면서도 차마 꿈도 꾸지 못했던 서민들에게 판교는 유일무이한 대안이었다. 정부는 판교를 강남 대체 신도시로 지목하며 강남의 고급 주거 수요가 분산되기를 기대했지만 서민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판교가 강남을 대체해줄 신도시였던 셈이다. 판교 아파트가 명실상부한 로또로 인정받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로또 당첨금(?)을 수령하려면 전매제한이 끝나는 오는 2016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대출이자 부담과 기회비용 등을 감안하면 분양가의 두배인 7억~8억원 이상까지는 올라줘야 로또의 체면을 지킬 수 있다고 한다. 당첨자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편이 국가적으로 이로워 보인다. 판교가 진정한 로또로 판명될 때, 2016년의 대한민국도 여전히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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