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북한이 개성공단지구에 관한 기존 계약을 무효화하겠다는 일방적 통보를 내놓은 데 대해 입주기업들은 충격과 당혹감에 휩싸인 채 북한의 진의 파악을 서두르고 있다. 대다수 기업들은 아직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며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공단 철수에 대비해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등 강경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기업들은 일단 이번 사태가 개성공단 철수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창근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은 “어제도 개성에 나갔다 왔지만 그런 얘기는 전혀 없었다”며 “당장 입주기업의 혜택을 없애겠다기보다는 남측과 당국 간 대화를 요구하는 북측의 강력한 메시지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의복업체의 한 관계자도 “1년 동안 대화가 없었던 북측이 유리한 입장에서 남측과의 대화를 끌어내기 위해 내민 일종의 초강수 카드라고 본다”며 “북측이 개성공단을 철수시킬 생각이었으면 계약을 무효화한다는 식으로 엄포를 놓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계약 무효화나 공단 철수로까지 비화되지는 않더라도 공단운영에 관한 규정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조봉현 기은경제연구소 박사는 “북측이 기존의 협의 내용을 백지화해서 인건비나 토지ㆍ세금을 과도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며 “결과적으로는 폐쇄로 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북측이 개정하려는 규정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존의 토지임대료와 임금, 세금 특혜를 보고 공단에 입주한 기업들 입장에서는 적잖은 경영상의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 입주기업 대표는 “3년 전에 부지를 확보해놓고 사업을 아직 시작하지 않은 상황이라 당장 큰 피해가 생기지는 않는다”면서도 “공장설립을 진행하지도 못하겠고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답답한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어지는 악재와 갈수록 악화되는 대북관계에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정부 보상을 요구하는 강경한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공단 입주예정인 한 봉제업체 사장은 “수천만원을 들여 토지만 조성해놓은 상태에서 7개월째 올스톱을 하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입주 포기기업에 대해 토지공사가 어떤 식으로 보상을 해줄지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며 피해보상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요구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건이 해결돼도 이런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어떻게 할지 고민이 크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손해를 보더라도 입주를 안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개성공단기업협회는 이날 공식 입장 발표를 통해 북측이 국제적 관례에 따라 기존 계약 내용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고 “남북 당국은 예정됐던 회담에 성실히 나와 개성공단이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