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월가 리포트] "디지털 금광 빅 데이터 잡자"… 글로벌 은행, 시장공략 잰걸음

천문학적 규모 데이터 통해 경기 진단·맞춤형 마케팅까지

새 수익창출 수단으로 활용

월가 35% "올 1,000만弗 투자"… 불법행위 적발 등 용도도 진화


글로벌 은행들이 디지털 시대의 금맥으로 떠오른 빅 데이터 시장 공략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이들 은행들은 인터넷, 스마트폰 등에 떠돌아다니는 천문학적 규모의 데이터를 통해 정확한 경기 진단을 시도하고 있고 고객별 맞춤형 마케팅, 대출 심사, 외환 거래 등 새로운 수익 창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더 이상 투자를 미뤘다가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이 주도하는 금융과 정보기술(IT)간의 융복합 흐름에 낙오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내부자 거래와 같은 조직 내 불법 행위 색출 등 빅데이터 활용 영역도 갈수록 진화하는 추세다.

◇"빅 데이터가 정보의 오아시스"= 최근 인터넷 발달에다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출현으로 측정조차 어려울 정도로 데이터 수가 급증하고 있다. 페이스북에서만 매일 500 테라바이트(1테라바이트는 1,024기가바이트)의 데이터가 생산된다. 빅데이터는 이처럼 컴퓨터가 관리하기 어려운 수치화된 데이터나 문자, 영상 등 분석이 어려운 비정형 데이터를 모두 포함한다.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에 따르면 빅데이터 관련 시장 규모는 지난해 144억 달러로 추정된다.


이 같은 데이터 홍수 속에 월가도 유용한 정보를 뽑아낼 수 있다고 보고 뒤늦게나마 관련 투자를 늘리고 있다. 예컨대 일부 미국 기업들은 신규 직원을 뽑기 전에 마약 검사를 실시하는 데 관련 검사 시약의 판매량을 보면 공식 통계가 나오기 이전에 실업률 지표를 전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골드만삭스가 다른 벤처기업과 함께 금융분석 플랫폼 업체인 켄쇼에 1,500만 달러를 투자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켄쇼는 애플의 시리(Siri)와 유사한 음성인식 서비스다. '3급 허리케인이 발생하면 미 주택 건설업체의 주가는 어떻게 움직일까' 등과 같은 금융 관련 질문에 답해준다.


켄쇼의 대니얼 나들러 최고경영자(CEO)는 "월가는 주가수익비율(PER), 시가총액 등 시장을 움직이는 데이터의 20%만 사용해 왔다"며 "중앙은행 발표, 지정학적 이벤트, 기상현상, 정보기술(IT) 신제품 발표 등 구조화하기 힘든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할 수 없다면 한쪽 눈을 감고 다른 눈도 반쯤 감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의 폴 워커 기술 부문 공동 수석도 "빅 데이터는 성장, 규제, 비용, 자본, 유동성, 리스크 등 은행의 주요 이슈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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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금융기관 등 125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35% 가량이 올해 빅 데이터 구축에 1,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2017년까지 75% 이상 더 늘릴 예정이다. 또 가트너가 올 9월 전세계 302개 고객사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5%가 빅 데이터에 투자하고 있고 투자 규모도 앞으로 2년간 평균 65%를 늘리겠다고 답했다.

◇불법행위 적발 등 적용영역 진화= 월가 은행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빅 데이터 활용 영역도 다양해지고 있다. JP모건 체이스,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씨티그룹, 웰스파고 등 월가 은행들은 이미 2년전부터 신용카드 정보, 소비자 거래 동향, 미 경제 지표 등을 하나로 통합하는 시스템을 도입 중이다. 고객들의 소비 트렌드를 초 단위로 분석해 소비자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는 이른바 '마이크로 마케팅'(micro marketing)이 가능해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최대은행인 유니크레디트도 최근 개인신용 평가기관인 FICO와 제휴해 빅 데이터 활용을 통한 고객 대출 심사로 수익률을 극대화하기로 했다. 미국 신용카드사인 '캐피털 원' 역시 최근 영국 빅데이터 업체인 완디스코와 손잡고 고객들의 거래 동향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독일 도이체방크의 경우 최근 고객의 외환거래 때 최적의 시간과 가격을 제공하는 빅 데이터 애플리케이션을 도입했다. 시장 참가자들간의 이메일 메시지, 언론 뉴스, 동영상 등 환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숨겨진 데이터를 기존의 정보와 통합해 고객들이 외환 익스포저(위험노출액)을 실시간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빅 데이터는 은행 내부 직원들의 불법행위를 잡아내는 원천으로도 등장했다. 가령 한 직원이 동료들보다 높은 성과를 올렸는데도 고객들에게 보낸 메시지 수가 너무 적으면 내부자 거래를 통해 부당이익을 취한 이상신호라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금융기관들이 전통적인 컴플라이언스(규정 준수) 시스템을 넘어 이메일, 휴대폰, SNS 등을 감시하는 최첨단 시스템을 도입 중"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은행들은 직원들이 리보(런던은행간 금리)나 환율, 원자재 가격을 조작하는 바람에 수백억 달러 규모의 벌금 폭탄을 얻어 맞은 상황이다. 스페인 업체인 포네틱의 경우 직원들의 수상한 대화 키워드와 거래 패턴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BBNA와 산탄데르에 판매 중이다.

빅 데이터 열풍은 은행은 물론 사모투자펀드(PEF) 업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최근 1년간 연기금, 국부펀드 등 큰손들이 돈을 맡길 때 빅 데이터 활용 문의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스턴 컨설팅의 크레이그 하펠트 파트너는 "자산운용사의 15% 가량이 빅 데이터 투자를 시작했다"며 "주어진 통계 분석이 아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데이터 수집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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