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의 세계무역기구(WTO) 사무국에서 열린 도하개발어젠다(DDA) 무역협상이 결국 결렬됐다. 협상 자체가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지만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를 비롯해 내년 9월에 있을 유럽연합(EU) 집행부의 전면 개편과 WTO 사무총장 교체, 그리고 내년 5월 이전에 치르게 될 인도 총선 등 각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협상중단 상태의 장기화를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협상결렬에 결정적인 단서가 됐던 농업 분야의 개도국 긴급수입관세(SSM) 발동 요건만 보더라도 선진국과 신흥개도국의 견해차이가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기존 세이프가드와 별도로 발동될 SSM의 요건과 관련, 미국은 수입물량 기준이 과거 3년 평균인 기준물량의 40% 이상 돼야 한다고 본 반면 인도는 10% 이상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최근의 곡물가 상승과 개도국의 농업투자 축소 추세를 감안한다면 다자간 협상에서 농업 분야 합의는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농산물 분야에 대해서는 개도국 지위를, 비농산물 분야에서는 선진국 지위를 주장해온 우리에게 DDA 협상 결렬은 득실이 교차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공산품 시장 확대나 주요 무역시장 접근 개선에서 부분적인 차질이 예상되지만 농업은 개방의 충격을 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수출의존도가 높고 대외지향적 경제구조를 가진 우리로서는 언젠가 다가올 전면적인 개방화 시대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제조업이든 농업이든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것은 물론이고 통상절차 선진화 등에도 차질이 없어야 한다. 과거처럼 효율성이 낮은 방식으로 막대한 농업지원 예산을 낭비하는 일 또한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다자간 협상이 중단되는 사태를 맞아 우리에게 양자협상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비준은 물론이고 한ㆍEU FTA, 한ㆍ인도 간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등도 제대로 마무리해 WTO 체제에 미비한 자유무역의 간극을 메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양자협정을 통해 우리 경제가 경쟁력을 강화해나간다면 다자간 협정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결코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