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12월의 독립운동가' 박동완 선생

국가보훈처는 기독교계 민족대표로 3ㆍ1운동에 참여했다가 2년간 옥고를 치르고 미주지역에서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평생을 바친 박동완(1885~1941) 선생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28일 밝혔다. 1885년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도곡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10대 후반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 한성중학교를 거쳐 한성외국어학교에 진학해 영어를 전공했다. 1911년학교가 폐쇄되자 배재학당 대학부로 전입해 기독교계를 배경으로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1915년 12월 창간된 ‘기독신보’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정동제일교회 전도사와 조선중앙YMCA 위원 등을 맡았다. 1919년 2월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기독교계 대표자회의에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선정돼 3ㆍ1 만세운동에 참가했다. 선생은 3월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태화관에서 열린 독립선언식에 참석,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 삼창을 외친 뒤 일경에 체포돼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기독신보’ ‘신생명’ 등 기독교 언론을 통해 언론 계몽활동에 매진했으며 1927년 1월 이상재, 안재홍과 함께 신간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해 상임 간사를 맡아 활동했다. 1928년 하와이 오아후 섬의 한인기독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 12년간 목회를했고 교회부설 한글학교를 확장해 교포 2세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웠다. 1941년 병을 얻어 이국 땅 하와이에서 순국한 선생의 유해는 1966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으로 이장됐다. 정부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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