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민영은 분양원가 공개않게

지난 9월 말 대통령의 TV토론 이후 또다시 분양원가 공개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건설 업계는 북한의 핵실험에 비견되는 사건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왜 분양원가를 공개해야 하는가. 이 문제부터 짚어보자. 분양원가 공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비자의 ‘알권리’를 내세운다. 개인 사유재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주택의 분양원가가 왜 그리 높은지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만약 모든 건설 업체의 모든 사업장에서 분양원가가 동일하다면 공개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건설 업체마다, 사업장마다 분양원가가 다르다. 동일한 지역과 조건에서 A기업은 원가 절감 노력을 통해 분양원가가 평당 1,000만원이고, B기업은 평당 1,200만원인 경우를 생각해보자. 주변 아파트시세를 기준으로 분양 가격이 결정됐을 때,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원가 절감 노력을 한 A기업은 B기업보다 더 ‘폭리’를 취한 기업으로 매도될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기업이 원가 절감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없다. 시장경제 체제의 존재 이유인 효율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처럼 개개인의 ‘알권리’ 주장이 사회경제 체제 전반에 미치게 될 폐해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 분양원가 공개 등을 통해 A기업이 분양원가 수준인 평당 1,000만원대에 저렴하게 아파트를 공급하도록 강제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주변시세가 평당 2,000만원이라면 저렴한 신규분양 아파트는 ‘로또복권’이 된다. 또다시 신규분양 아파트를 둘러싼 투기 열풍이 불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알권리’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라도 분양원가를 공개하게 되면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 검증 과정에서 분양원가의 적정성을 순순히 인정하기보다는, 왜 분양원가가 높은가를 따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분양원가를 구성하고 있는 개별 항목 하나하나는 모두가 납득할 만큼 명확하게 입증하기 어렵다. 분양 시점의 분양원가는 어디까지나 추정 가격일 뿐이지 준공된 시점의 실제 공사원가는 아니다. 게다가 ‘품질’ 문제로 들어가면 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예컨대 “왜 C등급 마감재면 충분한데 A등급 마감재를 써서 분양원가를 높였느냐”는 논란이 일게 된다. 분양원가 공개 항목 하나하나를 둘러싼 논란은 결국 소송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주택 품질은 떨어지고 주택사업을 수행하기 어려워지면서 주택 공급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분양원가를 공개하자는 주장은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시키자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분양원가 공개를 통해 건설 업체의 ‘폭리’를 제거하고 궁극적으로는 분양 가격을 낮추겠다는 목표를 암시하고 있다. 분양원가 공개를 찬성하는 국민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택사업 참여자는 건설 업체만 있는 게 아니다. 토지소유자, 토지개발자(토공ㆍ주공 등), 주택시행자(민간시행사ㆍ주공ㆍ지방공사 등), 주택구매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모두 주택사업 과정에 참여해서 이득을 보는 집단들이다. 건설 업체는 이들을 뭉뚱그려서 ‘폭리’를 취하는 대표집단으로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을 뿐이다. ‘폭리’ 문제만 해도 어디까지가 ‘폭리’고 어디까지가 ‘적정 이윤’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없다. 분양원가 공개를 한다고 해서 분양 가격이 떨어지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분양 가격 상승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그중 가장 큰 원인은 건축비가 아니라 택지비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최근 들어 택지비가 전체 분양원가의 50~60%를 차지하는 사례도 많다. 그런데 택지 공급은 사실상 공공 부문이 독점하고 있다. 저렴한 택지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한 분양원가를 공개하더라도 분양 가격은 떨어질 수 없다. 민간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정부가 강제할 일이 아니다. 분양 가격 인하를 위해 분양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면 번지수가 틀린 주장이다. 분양 가격 인하를 위해서는 공공 부문이 독점하고 있는 택지 공급 가격부터 낮춰야 한다. 또한 주택 수요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과도한 규제로 공급이 줄어든 서울과 수도권에 공급 확대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주택보급률, 인구 1,000명당 주택 수, 자가보유율 등 어떤 지표를 보더라도 아직까지 서울과 수도권은 주택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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