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과 미국 의회의 정부 부채 한도 증액협상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자 월가는 '제2의 리먼사태'를 막기 위해 현금 유동성을 늘리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등 비상대응책 마련에 돌입했다. 금융시장은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발생하거나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 현실화될 경우 투자자들이 수백억달러를 한꺼번에 인출할 수 있고 이는 지난 2008년과 같은 금융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미 정치권은 지난주 말 협상 결렬을 고비로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보다 진전된 결과를 강조하고 있지만 협상 자체가 그동안 지지부진한데다 합의내용도 부실논란을 비켜갈 수 없을 것으로 보여 어떤 형태로든 금융시장에 충격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특히 부채 한도 증액과 재정적자 감축을 한꺼번에 논의하는 협상을 하기에는 시한이 촉박하기 대문에 앞으로 백악관과 의회는 단계적인 부채한도 증액 등 임시방안을 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보다 확실한 대책을 요구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신용평가사들의 기준에 미달할 가능성이 높아 국가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월가의 금융기업들은 컨틴전시플랜을 마련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글로벌 금리전략 책임자 짐 캘런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금융시장이 무너졌다는 점을 감안해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비상 라인을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사들은 일단 신용경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당장 신용등급이 강등될 경우 은행들의 단기자금 조달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은행들은 그동안 미 국채를 담보로 제공하고 머니마켓에서 단기자금을 조달해왔는데 신용등급 강등이 발생하면 펀드들이 추가 담보를 요구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경우 은행권은 수백억달러의 자금이 필요하다.
또 신용등급이 강등되면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지급 문제가 수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장 필요한 자금을 준비하는 데도 신경 쓰고 있다.
투자자들 역시 유사시 달러화 미 주식 국채가치에 대비하고 있다. 180억달러의 자산을 운용해온 피프스에셋매니지먼트의 케이스 위츠 투자책임자는 "방어 조치를 취해왔다"며 "4월 2%에 불과하던 현금 비중을 현재 10% 수준으로 높였다"고 말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장기국채 대신 8월 이전에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로 투자대상을 돌리고 있다. 디폴트 시한인 8월2일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국채경매가 실시되는 8월4일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와 관련, 일부 투자자들은 국채를 계속 매입할 것이지만 금리는 크게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에이자이 라자드햐크샤 바클레이스캐피털 전략가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우려가 투자자들 사이에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 국채 수익률은 지난 몇 달간 큰 변동이 없었다. 미국이 디폴트라는 파국을 맞지 않을 것이며 정부 부채 한도 증액에 실패하더라도 정부가 채권 원리금 상환을 가장 우선순위에 둘 것이라는 확신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에 대해 잇따라 경고를 보내온 신용평가회사들의 움직임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존 챔버스 S&P 국가신용등급 평가위원회 의장이 월가 주요 펀드 매니저 및 연기금과 접촉,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로드쇼'를 했다고 보도했다. 그 대상에는 78억7,000만달러의 미 국채를 보유한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캘퍼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S&P와의 회동에 참석했던 한 펀드매니저는 "등급 강등이 불가피하겠다는 하는 생각을 회동 후 하게 됐다"며 "S&P가 우리를 준비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다"고 전했다.
행정부도 비상계획을 점검하고 있다. 정부의 세수는 지출의 60%만을 감당할 수 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FRB의 금고인 뉴욕연방준비은행의 윌리엄 더들리 총재도 22일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과 만나 유사시 대책을 협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