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시간대 국민의 의약품 구매 불편 해소를 위해 추진된 일반의약품 슈퍼ㆍ편의점 판매가 사실상 무산됐다. 약사들의 강력한 반발과 여당이 내년 총선 등을 우려한 눈치보기로 인해 보건당국이 우회전략을 마련했으나 국민들의 불편 해소는 요원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3일 국민의 의약품 구입 불편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이달 중순에 중앙약사심의위원회(약심위)를 열어 현행 의약품 분류에 대해 본격적으로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의약품은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과 소화제, 해열제 등 처방이 필요 없이 약사가 팔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나뉜다. 양쪽에도 속하지 않는 소독약, 금연보조제 등은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약국이 아닌 슈퍼 등 어디에서나 판매가 가능하다.
복지부는 의약품 목록을 재점검해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일부 품목을 약국이 아닌 슈퍼나 편의점에서도 판매가 가능한 의약외품으로 분류하는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것. 그러나 일반의약품 중에 의약외품으로 편입이 가능한 품목은 소화제나 파스 등 고작 20여개 품목에 불과하다. 손건익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도 “의약외품은 인간의 신체에 간접적으로 작용하는 약품,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지 않는 약품”이라며 “지금 분류체계로는 몇몇 감기약, 진통제는 의약외품으로 분류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의사 4명, 약사 4명, 공익대표 4명 등으로 구성된 약심위가 국민의 불편을 얼마나 해소해 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동욱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3~4개월 정도면 결론이 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지만 과연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복지부는 당초 의약품의 안전성을 확보한 채 국민 불편 해소방안을 추진해왔으나 현행 약사법에서 ‘약을 약국에서 약사에게만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규정 때문에 약사법 개정 없이 특수장소에서 의약품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관공서, 대형 마트나 편의점 등이 거론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역시 약사회가 수용하지 않아 복지부는 추진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여당이 지난 4ㆍ2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후 바닥 민심을 크게 좌우하는 약사회를 자극할 경우 내년 총선, 나아가 대선에서도 유리할 게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복지부가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책과 관련 복지부가 “당정협의를 거쳤다”고 밝힌 것도 정치권에서는 ‘이 정도면 할 만큼 했고 약사들의 반발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복지부는 약사회가 밝힌 모든 약국의 ▦주1회 밤 12시까지 운영 ▦월1회 일요일 근무를 통해 어느 정도 의약품 구입 불편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와 관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성명서를 통해 “당번약국 활성화 방안은 이미 심야응급약국 운영에서 실패한 방안”이라며 “약사회 눈치 보기에 급급해 국민요구를 무시한 복지부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