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가뜩이나 어려운데" 기업들 초비상

사내 법무팀 대폭 강화등 대책마련 서둘러<br>변호사도 본격 가세… 인터넷 서비스까지<br>"소송남발 방지 방안 시급" 지적 잇따라


지난 3월 국민은행은 고객 3,000명에게 홍보메일을 발송하면서 ‘실수’로 3만명의 고객정보가 담긴 파일을 첨부해 발송했다가 집단소송에 휘말렸다. 사과메일을 보냈지만 허사였다. 당장 개인정보 유출 피해로 정신적 피해를 봤다는 고객 1,026명으로부터 30억원 규모의 집단소송을 당해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이다. 최근에는 대필번역 논란이 일고 있는 ‘마시멜로 이야기’ 책 구입자들이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8년간 세제가격을 담합해온 제조업체들도 고객들의 집단소송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처럼 고객들의 권리의식 강화로 과거에는 참아 넘겨왔던 피해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내에서도 집단소송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경쟁이 심해진 변호사들이 집단소송을 대리해 수익을 올리려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집단소송이 만연되는 풍조도 나타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3중, 4중 부담”=집단소송의 대상(피고)이 되는 기업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환경에 집단소송이라는 추가 부담을 지게 돼 초비상 상태다. 특히 사소한 실수가 대규모 집단소송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빈발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전문 변호사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해 집단소송에 대비하거나 사내 법무팀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특히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막기 위해 인터넷 보안을 강화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들의 작은 실수가 대규모 집단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일부 기업들은 ‘소송 노이로제’까지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개인정보 보안에 전력하고 있지만 한 순간의 실수로 수십억원의 소송에 휘말려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소송금액도 커져 기업들이 소송에서 패할 경우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어 기업들의 고민은 커져가고 있다. 또 집단소송에 휘말릴 경우 부도덕한 기업 등으로 낙인 찍혀 수년간 쌓아온 대외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H사 법무팀 관계자는 “집단소송 등에 대비하기 위해 이름 있는 변호사를 대거 영입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이 기업들의 부담이 되고 있다”며 “고유가, 내수침체, 북한 핵실험 등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3중, 4중의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소송위임 서비스도 등장=최근 법률포털 사이트 ‘로마켓’은 인터넷으로 소송 위임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집단소송 온라인 자동 솔루션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로마켓’ 관계자는 “집단적 권리 구제가 필요한 사건을 단시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소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원스톱 서비스 등장에 대해 “집단소송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신호탄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집단소송이 잘 이뤄지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변호사들이 수많은 피해자들과 일일이 접촉해 원고모집을 해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였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클릭 한번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집단소송에 참여하는 피해자들도 늘어나고 소송건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내년부터는 2조원 미만의 상장업체까지 증권관련 집단소송이 확대되고, 과거 분식회계에 대해서도 유예기간이 끝나는 만큼 국내 집단소송 시장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집단소송 남소 방지 필요=국내에서 집단소송을 전문으로 대리하는 변호사는 법무법인 한누리의 김주영ㆍ정경선 변호사를 비롯, 김연호 변호사 등 손에 꼽을 정도다. 통상 변호사들은 전체 소송금액의 10~15% 정도를 수익으로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변협의 한 관계자는 “집단소송은 원고모집 절차나 소송기간이 길어 다른 사건에 비해 매력이 떨어지지만 변호사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신규 진출도 잇따를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이처럼 기업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이 선진국처럼 전방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일부에서는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최근 천문학적 액수의 집단소송 근거로 활용돼 기업들에 지나치게 큰 부담이 되고 있는 ‘사베인스 옥슬리법’ 개정작업을 추진 중이다. 회계법인 KPMG는 사베인스 옥슬리법에 따른 증권 집단소송으로 미국이 치르는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2∼3%에 이르고, 해외 기업들도 미국 투자를 꺼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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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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