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기로에 선 한미FTA] <하> 너무 앞서지 말고 차분히 대비를

"재협상, 美車업계도 실익없어" 설득 할수도<br>오바마 체면 함께 살려줄 외교적 역량도 필요<br>"美 아무 결정도 안했는데 우리만 시끌" 지적<br>FTA발효 때까지 국익에 도움되게 준비해야


“정공법과 외교적 기술로 오바마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 기로에 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전문가들은 극단적 상황을 기정사실화하는 성급함보다는 “국익에 보탬이 되는 열린 가능성을 극대화해야 한다”며 이같이 조언했다. ‘FTA 폐기는 미국 자동차 업계에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경제논리가 합리적 성향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설득할 무기라는 점도 강조했다. 특히 국내에서 한미 FTA를 둘러싸고 지나치게 앞서가고 정쟁에 치우치기보다는 치밀하게 손익계산을 따져 이익을 극대화하고 피해는 최소화하는 준비 작업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오바마 생각 바꿀 수 있다’= 최근 한미 FTA 재협상을 둘러싼 논의는 미국 측 요구에 수용과 거부 이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처럼 진행되고 있다. 오바마가 재협상 요구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설득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우선 한미 FTA 재협상이 미국 자동차 업계에 줄 실익이 별로 없을 뿐 아니라 미국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이득을 차버리는 것이어서 그렇다. 한국에 수출되는 미국 차는 FTA 발효 즉시 평균 8%의 고율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이에 따라 국내 판매시 10%가량의 가격인하 효과를 낼 수 있다. 미국 자동차는 FTA 발효로 가격인하와 브랜드 이미지 개선을 동시에 추구할 기회가 열린다. 미국 업계만 누릴 혜택은 아니지만 국내 자동차 보유세 등 세제도 미국 측 요구대로 단순화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미 FTA 자동차 협상에서 미국 측 요구는 대부분 수용됐다”고 말했다. 한국차가 미국시장에서 얻을 이익을 봐도 미국 메이커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 미국 측은 2.5%에 불과한 관세를 3,000cc 이하는 발효 즉시, 3,000cc 이상은 3년 동안 시간을 갖고 철폐하기로 했다. 경기침체로 미국시장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한국차의 대미 수출물량은 연간 67만대 수준인데 이미 미국에서 30만대의 생산체제를 갖춘 현대ㆍ기아차는 내년 하반기까지 60만대로 생산시설을 확충하게 된다. 미국 측이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픽업트럭 관세는 10년 내 단계적으로 철폐할 예정이지만 현재 현대ㆍ기아차는 아직까지 픽업트럭 생산조차 고려하지 않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합리적 성향인 오바마에게 자동차 시장의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면 설득하지 못할 것도 없다”며 “자동차 부문에 미국 측의 추가 요구사항이 있으면 한미 간 통상협의를 통해 풀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 자동차 업계의 요구와 관련해 오바마의 체면을 살려줄 외교적 역량도 필요하다. 비록 재협상을 통해 얻을 실익이 작아도 오바마 측이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을 대변해 정치적 제스처를 취할 가능성은 높다. 오바마의 인수위와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각별한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다. ◇차분히 한미 FTA 대비해야=최근 한미 FTA를 둘러싼 논란은 정쟁의 대상이 되면서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회 본회의에 비준안이 상정되거나 통과 절차를 밟는 것도 아닌데 상임위 상정조차 순조롭게 이뤄지지 못한 데 대한 비판이다. 특히 미국 측이 재협상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오바마 측이 한미 FTA 재협상을 우선순위에 놓고 검토하지도 않는 상황이어서 우리만의 논란은 꼴불견이라는 지적이 많다. 민간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상대방은 권투시합을 할지 말지도 결정하지 않았는데 우리만 혼자 링 위에 올라가 땀 빼고 있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차기 미 행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하든, 하지 않든 FTA 발효까지 걸릴 적지 않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준비도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FTA에서 유동적으로 합의된 개성공단의 특혜관세 부여를 북미관계 개선 가능성과 연계해 앞당기는 일이나 국내 전문직의 미국 취업비자 확보에 차기 행정부와 협조하는 일이 꼽히고 있다. FTA로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될 농축산 업계를 위한 대책을 가시적으로 수립하는 것도 미진한 부분이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정부가 FTA 피해 부문에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국민이 제대로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극단적 상황을 가정해 한미 FTA를 둘러싼 논의가 호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관련해 한미 FTA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제한하고 파생금융상품 문제를 키울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안호영 통상교섭조정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앙은행 기능과 통화정책에 대해 FTA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일축한 뒤 “신금융 서비스 역시 국내법상 판매가 가능해야 도입할 수 있고 상품 건별로 인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소지는 적다”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발생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문제를 부각시켜 합리적 토론마저 무의미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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