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비워야 채운다

새해는 새 각오로 시작된다. 금연이나 다이어트 등 개인적인 각오에서부터 기업 대표들의 경영각오, 대통령의 국정각오 등 각종 각오가 넘친다. 하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각오는 각오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인은 무엇일까. 정보력ㆍ자금력ㆍ미래예측능력ㆍ판단력ㆍ부지런함ㆍ열정 등 많은 요소가 있을 것이다.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은 최근 발간한 그의 자서전 '배움을 경영하라'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지금 당장 당신을 지켜주는 안전지대를 떠나라"고 충고하고 있다. 열심히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변화에 대한 의지라는 지적이다. "성(城)을 쌓는 자는 망한다"는 칭기즈칸의 말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이런 관점에서 요즘 연예계의 화두인 심형래는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성공인자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심형래는 지난 1980년대 안방극장을 주름잡던 인기 개그맨에서 영화제작자로 변신했다. 그가 주연 겸 감독을 한 코미디영화 '라스트 갓파더'는 국내 개봉 첫 주에 관객 130만명을 넘어섰다. 그의 가치는 다소 엉성해 보이는 작품을 히트시키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변신추구에 있다. 그는 '디워'에 이어 라스트 갓파더로 세계 영화시장의 메카인 할리우드를 공략하는 중이다. '영구 없~다'고 말하는 모습이 '영구 있~다'고 외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는 안전지대(국내시장)를 떠나 변화(미국시장)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물놀이의 김덕수, '난타'의 송승환,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원더걸스를 빌보드에 올린 박진영 등과 함께 성공인자를 갖춘 연예인으로서 여타 별들과 차별화된다. 이들은 안전지대를 떠나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변화는 위험하다. 하지만 변화하지 않는 것은 더 위험하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때 각광 받다가 거의 사라진 노인들의 부업거리가 있다. 지하철에서 신문을 수거하는 일이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출근 시간대에 여러 명을 만날 수 있었으나 이제는 거의 만나기 어렵다. 노력에 비해 별로 돈이 안 되는 레드오션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신문을 수거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키 큰 노인은 승객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긴 팔을 이용해 선반 위의 신문을 쓸어간다. 키 작은 노인은 선반 위 신문을 막대기 같은 도구를 이용해 손이 닫는 부분으로 끌어내 낚아 채거나 앞에 서 있는 승객의 옆구리를 찔러 신문을 내려 달라고 부탁한다. 하나라도 더 모으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는 분들을 보면 정말 열심히 산다는 생각이 든다. 노인들이 신문을 찾는 모습은 맹수가 먹이를 노릴 때와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때론 승객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서울메트로 측이 내놓은 대책이 '신문 가지고 내리기'다. 효과가 있었다. 지하철 내에 신문이 줄어들자 신문수거 노인도 사라졌다. 하지만 서울의 한 지하철역 승강장에는 신문수거로 여전히 짭짤한 수입을 올리는 노인이 있다. 그는 승객들이 내려서 출구로 나가는 동선에 신문을 조금 쌓아 놓은 수레를 세워놓고 그 옆에 서 있다. 많은 승객들이 지하철에서 들고 내린 신문을 그곳에 놓고 간다. 금새 수레에 신문이 수북하게 쌓인다. 이 노인은 선반에 있는 신문을 포기했기에 수십 배 더 많은 성과를 올리게 됐다. 승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수입은 더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 냈을까. 감탄스럽다. 이 노인에게 신문수거는 여전히 블루오션이다. 4억년 전 바다를 버리고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가 없었다면 오늘날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전지대를 떠났기에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인생도 술잔도 비워야 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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