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5월 21일] 신토불이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에게 긴히 상의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회사 중역이 간질환 치료차 미국에 한 달째 가 있는데 별로 차도가 없다는 것이다. 심장내과 전공인 필자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했으나 얘기를 듣고 보니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됐다. 한국에서 간에 사과만한 농양(고름주머니)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비교적 쉽게 치료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세계적인 병원에서 진료받기 위해 입원한 후 아직 퇴원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단은 기생충의 침입으로 간에 고름이 생기는 아메바성 간농양이었고 필자도 레지던트 시절에 수없이 겪어보았던 병명이다. 한국에 많은 이 질환은 수술하지 않고 주사바늘로 뽑아낸 후 적절한 약을 쓰면 그리 어렵지 않게 치유되는 병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자주 접하지 못하는 질환으로 세계적으로 이름난 병원에서 초기 치료 접근방법에 오류가 있어 고생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처음 미국 유학을 가서 첨단시설과 어줍은 언어문제로 집담회 시간에는 뒤에서 눈치만 보고 있을 때 100여명의 의사가 모여 한 환자의 병세와 치료방법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걸려 있는 X레이 사진을 보니 한국에서 매일 몇 명씩 보았던 심장의 혈액흐름을 조정하는 승모판이라는 판막기능이 불완전한 상태가 되는 승모판막증 환자였다. 이 환자는 임신 말기였고 수술 및 마취 방법에 대해 격론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유일한 동양계 의사였던 필자는 조심스럽게 한국에서의 경험을 얘기했고 결국 그 환자는 필자의 방법대로 마취와 수술을 시행해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모두 구할 수 있었다.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필자는 이후 ‘수월한’ 병원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승모판막증은 동양에 특히 많은 병이었다. 서양은 막대한 연구비와 인력으로 새로운 의료장비와 약품들을 개발해내고 있다. 사실 한국 의료계가 그러한 연구배경을 따라가기는 아직 어렵다. 하지만 진료비가 미국의 7분의1 혹은 10분의1밖에 안 된다고 해서 진료의 질도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우리나라와 미국을 비교할 때 치료면에서는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병이 났을 때 무조건 세계적인 외국병원을 찾는 것보다는 좋은 의사를 소개받을 수 있고 진지하게 상의할 수 있는 한국 주치의를 잘 두는 것이 크고 거시적인 계획을 세워 이뤄나가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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