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0원도 좋으니 더 떨어지기 전에 얼른 팔아주세요.”(A기업 담당자) 960원대로 개장한 원ㆍ달러 환율이 950원대로 급락하자 기업들이 앞 다퉈 달러매물을 쏟아내고 있다. A기업의 환율담당자는 “정부의 전망을 그대로 믿었다가 오히려 손해를 키운 꼴이 됐다”며 “지금이라도 팔아야지 더 두고 볼 형편이 아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추가 하락에 대한 우려로 달러매물을 쏟아내고 있지만 외환당국의 개입은 미미했다.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은 이날 “외환시장의 정상적인 흐름에서 벗어났다고 판단되는 이상한 조짐이 보일 때는 개입이 가능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지나치게 오버슈팅(단기과열)된 상황에서 당국자 멘트로는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B은행의 딜러는 “역외 투기세력들의 정확한 정체도 모르는 당국이 언제까지 투기세력 탓만 할 것인지 한심스럽다”고 일침을 놓았다. 4월 들어 재발된 ‘환율 쇼크’는 연초와 매우 비슷한 양상이다. 역외에서 달러매도를 시작하면 은행권이 추격매도에 나서고 마지막에 국내 기업들이 가담하는 형국이다. 지난 4일 동안 하락폭은 자그마치 17원30전. 이광주 한국은행 국제국장은 “외국인 주식매수세와 사상최대 수출실적, 콜금리 인상 가능성 등 삼각파도에 휩싸인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며 “수출기업들의 대규모 선물환 매도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환율급락의 바닥은 어디일까. 외환 전문가들은 950원대도 안심할 수 없으며 정부의 개입에 변화가 없을 경우 단기적으로 940원까지 추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조휘봉 하나은행 과장은 “외국인들이 배당금을 송금하지 않고 국내 주식을 다시 사들이면서 환율상승이 무산되고 있다”며 “950선이 무너질 경우 940선까지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완 대구은행 과장은 “3월 말부터 주식시장이 회복기미를 보이면서 외국인들의 포지션이 바뀌고 있다”며 “환율하락 속도가 빨라질 경우 외환당국이 공격적 개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정미영 우리은행 과장과 구길모 외환은행 과장도 “950원이 심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레벨”이라고 밝혀 다음 지지선을 찾기 힘든 실정이다. 이들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는 것이 손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충고했다. 이진우 농협선물팀장은 “해외 IB들의 원화 공격이 당국 개입에도 불구하고 더 밀릴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행해지고 있다”며 “당국과 시장이 자신의 ‘패’를 쉽게 보여주면 환율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