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訴


지역사무소로 예순아홉되신 할머니가 찾아오셨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인데 수급비가 확 깎였다 한다. 세금을 내는 수입(어려운 동네에서는 세금을 내는 수입이 중요하다)을 올린 자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식 얘기를 물으니 참으로 기구한 사연을 쏟아냈다. 할머니는 스무 살에 시집가서 첫 딸을 낳고 5년 만에 집에서 쫓겨나 40여년을 홀로 살았다. 할아버지는 다른 여자를 집으로 들여 자식 둘을 더 봤다. 문제는 이 두 사람이 법적으로 이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사망하자 생전 보지도 못했던 자식 둘이 할머니 호적으로 올라왔다. 바로 이 자식 중 하나가 수입이 생긴 것이다. 백방으로 해결책을 찾으니 바로 '친생자관계 부존재확인의 소'라는 재판을 가정법원에 청구해야 함을 알아냈다. 호적에 올라와 있는 자식 둘은 친자식이 아니니 호적을 정리하는 재판을 해야 한다. 약 3개월 정도면 승소 판결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연후에 관계 당국에 수급자 지위 원상회복을 청구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정부가 복지체계 개편에 나섰다. 언론에는 이 할머니 같이 딱한 사연이 대서특필됐다. 생전 한번 찾아오지도 않는 자식, 저 먹고 살기도 빠듯한 자식, 손주만 달랑 남겨놓고 집 나간 자식 가진 노인 분들은 하루하루가 괴롭다. 현장에 있는 실무 담당자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할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예산을 확대하거나 예산내역을 개편해야 한다. 전자는 결국 돈의 문제다. 경제가 좋아지든 세금을 올리든 다른 부분의 예산을 돌리든 돈이 있어야 한다. 후자는 형편이 되는 사람에게는 적게 주고 어려운 사람에게 더 많이 주는 것이다. 연령 베이스가 아니라 소득 베이스로,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선택적 복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대전에 사시는 우리 아버지는 자식 집 오실 때 꼭 무궁화호를 타신다. 자식들이 먹고 살만 하니 이제 KTX 타시라 하면 무궁화호는 노인들에게 요금을 깎아주는데 무슨 소리냐고 손을 젓는다. 정부 예산은 한정돼 있다. 나는 예산을 심의하는 국회 예결위원이다. 당장 내년에 선거가 있는, 그리고 무궁화호를 고집하는 아버지가 있는 국회의원은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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