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중앙은행에 맞서지 마라

한국은행이 동네북 신세다. 금리인상 시기를 놓쳤다는 실기(失期)론이 첫 번째 쏟아지는 비판이다. 경쟁 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를 잡겠다고 시장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 자체가 물가를 책임지는 한은으로서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공정위가 업무 본령을 벗어났다는 논란은 차치하고 한은이 그동안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라는 뒷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시장과의 소통 부재 또는 엇박자도 도마에 오른다. 우회전 깜박이를 켜고 좌회전을 한 것은 아니지만 우회전 신호를 주고 돌지 않으면 시장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이른바 '남대문 출장소'로 대표되는 한은 독립성 훼손을 둘러싼 시비는 가장 뼈아프다. 김중수 총재, 60%만 시장 교감 2주 전 미국 워싱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 회담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김중수 한은 총재는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소재 펜실베이니아주립대를 찾았다. 김 총재가 유학시절 은사였던 로런스 클라인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김 총재는 이 자리에서 만난 뉴욕 특파원들에게 통화정책 엇박자에 대한 비판에 이렇게 반박했다. "중앙은행이 시장의 기대치에 항상 맞추거나 시장이 늘 따라오기는 어렵다. 그래서 60~70%는 맞추고 30~40%는 따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장의 기대에 100% 맞추기만 한다면 '개 꼬리 물리기'가 될 것이다." 중앙은행에 시장과의 교감이 중요하기는 하나 늘 시장의 기대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소신이다. 수긍이 간다. 시장은 양떼들이 평화롭게 풀은 뜯어먹는 목장이 아니라 먹고 먹히는 냉혹한 정글일진데 중앙은행이 시장에 끌려다니기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금리인상에 베팅한 투자자들은 예상하지 못한 금리 동결에 낭패를 봤을 터이니 금리를 올리지 않은 한은에 대고 싸우고 싶을 게다. "한은이 시장과 교감하지 않느니." "우회전 깜박이 넣고도 돌지 않느니." 이런 저런 불만이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월가에서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맞서지 마라(Don't fight the Fed)'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FRB의 의중을 읽지 못하고 반대로 움직이면 낭패를 본다는 뜻의 이 말은 1차 양적 완화 정책을 종료할 즈음인 지난 2010년 봄 월가에 제법 유행했다. 월가의 불문율도 통하는 이 말은 벤 버냉키 FRB 의장이 양적완화 종결을 1개월 앞둔 2010년 2월, 재할인율을 0.75%로 전격 인상하자 시장이 긴축의 본격 신호탄으로 해석하면서 등장했다. 버냉키 의장은 재할인율 인상이 긴축의 시작은 아니라고 시사했음에도 의중을 잘못 읽은 투자자들은 주식을 내다 팔았다. 당시 재할인율 인상은 긴축의 서막이 아니라, 시중금리(연방기금금리)가 FRB의 정책 목표선(target rate)을 밑도는 기현상이 발생하자 금리 왜곡을 막기 위한 임기응변이었다. 긴축 가능성에 지레 겁먹고 주식을 판 투자자들이 큰 돈을 날렸음은 물론이다. 버냉키 의장이 27일 오후(현지시간) 1914년 FRB 창설 이후 97년 만에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시장 교감을 위한 새 장을 열었다. 긴축시점이 언제냐는 오랜 궁금증을 다 채워주지는 않았지만 무 난한 데뷔로 보인다. 비밀의 門 열리는 FRB FRB 비밀의 문은 열리고 있다. 앞으로 통화정책 결정 후 분기마다 정례 회견을 한다니 FRB의 속내가 뭔지를 두고 시장이 헷갈릴 일도, FRB와 맞서 싸울 일도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18년간 미국의 경제 대통령으로 군림한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 시절에는 그가 들고 오는 서류 가방의 크기를 보고 의중의 한 단면을 파악했다니 이제 FRB의 비밀주의 전통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 돼가고 있다. 한은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개최 후 기자회견을 갖는데도 중앙은행과 맞서겠다는 일이 비일비재한 시장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쯤 '한은과 맞서 싸우지 마라'는 말이 불문율로 자리 잡을는지 모르겠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