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기업 옥죄는 정부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19일 열린 한 간담회에서 석유화학과 철강업계를 겨냥해 작심한 듯 말을 쏟아냈다. 시장주의자로 알려진 그의 입에선 "석유화학과 철강 등 원자재 공급 대기업은 원자재 가격 인상을 가급적 최소화해 달라"는 말이 거침없이 흘러 나왔다. 정부 인사가 직접 기업들에 가격인상 자제를 요구한 것은 지난 14일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철강업계 신년 하례식에서 '제품가격 상승 자제'를 강조한 지 벌써 두 번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국내 한 대기업은 예정된 제품가격 인상 계획을 전격 보류했다. 대신 이 회사는 기자에게 "정부 눈치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발적으로 가격 인상을 자제한 것이라고 널리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기업이 얼마나 부담을 느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상황이 이렇자 기업들은 주주가 아닌 정부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최고경영자(CEO) 능력은 주주 이익 극대화 대신 정부와의 코드 맞추기라는 냉소 섞인 말이 나올 정도다. 주식회사의 설립 목적이 많은 이윤을 남겨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윤을 축소하라는 정부의 거친 주문은 시장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낳고 있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명분으로 기업들을 향해 사실상 마진 축소를 요청하고 나선 것은 결국 주주들을 배반하라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의 이 같은 가격 인상 자제 요청의 표면적 배경은 물가 안정이다. 하지만 좀 더 멀리 보면 인위적인 가격 누르기는 향후 더 거센 제품가격과 물가 상승 압력으로 분출될 개연성이 크다. 기업을 압박하면서 일시적으로 얻는 물가안정이 얼마나 장기간 지속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는 애꿎은 기업 탓만 하지 말고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외부 변수에 어떤 대비를 했는지 자문해보기 바란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을 걱정한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점진적인 금리인상을 주장할 때마다 요지부동하던 정부가 제대로 자기반성이나 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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