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박쥐와 까르푸

[기자의 눈] 박쥐와 까르푸 생활산업부 홍준석 기자 jshong@sed.co.kr 이솝우화에 박쥐 이야기가 있다. 날짐승과 들짐승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박쥐는 ‘날개가 있다’며 새 편에 붙었다. 하지만 상황이 변하자 ‘모양은 쥐’라며 짐승 쪽으로 옮겼다. 우화는 박쥐가 이쪽저쪽을 오가며 중간에서 유리한 쪽으로만 붙는 ‘간사한 동물’이라며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하지만 요즘 까르푸의 행태를 보면 아예 이런 교훈을 모르는 것 같다. 아니 일부러 ‘나는 박쥐다’며 공공연히 광고하려고 안달하는 모습으로까지 비쳐진다. 롯데와 신세계 사이에서의 줄타기가 단적인 예다. 지난 13일 까르푸는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뒤부터 최고가액을 써낸 롯데 측 하고만 심도 있는 협상을 벌여왔다. 32개 매장 현장실사권도 유일하게 롯데에만 부여했다. 하지만 롯데가 까르푸의 여러 조건에 이의를 제기하며 인수가액을 깎으려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신세계로 쪼르르 달려가 ‘아직 탈락한 게 아니다’며 가능성을 내비쳤다. 나아가 ‘좀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면 신세계와도 매각 딜을 할 수 있다’며 은근히 추가 베팅까지 부추겼다. 상도의는 관심 없다는 듯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양다리를 걸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접한 롯데가 열받았음은 당연지사. 롯데의 한 관계자는 “까르푸의 이중 플레이에 질릴 정도”라며 “아마 도장을 찍기 직전까지 저울질할 자들”이라고 어이없어 했다. 신세계의 한 고위 관계자 역시 “‘기회가 있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 롯데를 압박하려는 냄새가 짙다”며 “우리를 이용하려는 모습에 매우 불쾌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기회주의적 막후(幕後) 플레이는 이뿐만이 아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때도 그랬다. 당초 롯데와 홈플러스 두 업체를 복수로 선정했지만 홈플러스가 거절하자 뒤늦게 부랴부랴 신세계와 이랜드까지 우선협상대상자로 끼워넣는 상식밖의 행태를 보인 것이다. 누가 어떻게 보든지간에 나만 살고 보자는 박쥐의 행동과 다름없어 보인다. 하물며 인수전에 참가한 한 높은 관계자까지 “수많은 인수합병(M&A)을 해봤지만 이런 더티 플레이는 처음”이라는 하소연을 내뱉을까. 우화에서는 결국 이중성이 탄로 난 박쥐가 양편에서 모두 쫓겨난다. 물론 까르푸가 팽까지 당하지야 않겠지만 이 땅에서 최소한의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이솝우화를 곱씹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입력시간 : 2006/04/2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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