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변모하면서 사라져가는 풍습중의 하나가 입춘축(立春祝)이다. 우리 조상들은 농사철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 되면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입춘축을 써 붙이고는 했다. 이런 세간의 풍습은 한국과 중국에서 입춘절이 되면 궁중에서 신하들이 지어 올린 연상시(延祥詩) 중에 좋은 글귀를 뽑아 써 붙였던 데 유래한다. 입춘축의 글귀 중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다. 이외에도 입춘절에는 농민들이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한해 농사를 점치는 풍습을 비롯하여 입춘수(立春水), 입춘굿 등 지역마다 여러 가지 풍습이 있었다. 이런 여러 가지 입춘절의 풍속은 농경문화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화적 규범이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대문이나 문설주에 써 붙이시곤 했던 입춘축의 글귀를 학창시절 이후 잊고 지내왔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 필자가 재직하는 회사가 증권거래소 상장이라는 큰 관문을 통과하면서, 그 기억은 내게로 다시 돌아왔다. 상장일을 고심한 끝에 입춘이었던 2월4일로 정했다. 입춘은 24절기 중 첫번째 절기로 아낙들은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남정네들은 겨우내 넣어둔 농기구를 꺼내 손질하며 한 해 농사에 대비했다. 일년 농사의 시작이 이제부터이기 때문이다. 상장이라는 또 다른 시작을 하려는 회사로서 이날보다 더 길할 날이 있을까 싶어 입춘일을 상장일로 택하게 되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날씨에 마음 졸이면서도 항상 풍작을 기원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기업경영에 임했던 필자에게 올 입춘절의 의미는 특히 새록새록 다가왔다.
봄처럼 희망과 의지로 가득 찬 계절이 있으면, 언제든 가을 같이 뿌듯하고, 여름처럼 왕성하며, 겨울 같이 움츠리는 시절도 있을 것이다. 다만, 봄이라는 이 절호(絶好)의 천시(天時)에 품었던 희망을 끝까지 잃지 않는다면,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항상 봄처럼 누릴 수 있으리라는 믿음만은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맹자는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地利)는 인화(人和)만 못하다 했다. 기업이든 국가든 아무리 좋은 시절과 좋은 기회를 만난다 해도,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뭉치지 않는다면, 그것이 경영이든 정치든 허사로 돌아간다.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지 오래됐고 사회 전체가 신용불량자 문제와 청년 실업 문제를 앓고 있다. 우리가 날이 새도록 정쟁과 분규를 일삼는 와중에, 저 좋은 시절과 기회를 나날이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강석인 한국신용정보 대표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