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문화유산/김창실 선화랑 대표(로터리)

탈이데올로기 시대에 사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역시 나라마다 갖고 있는 문화유산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느끼는 일인데 경치가 수려한 북악산 밑에 자리한 청와대와 그 앞에 아름답게 펼쳐진 경복궁을 지나칠 때의 그 감회는 볼 때마다 새롭다. 더욱이 중앙박물관의 민속박물관 앞에 걸려있는 「문화유산의 해」라는 글귀를 대할 땐 문화사랑에 대한 생각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처럼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은 민족도 없다. 하지만 갖은 시련 속에서도 우리의 조상들이 간직해 물려준 문화유산들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조상에 대한 고마움과 문화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끼며 뿌듯한 가슴으로 출근길을 재촉하곤 한다. 모 신문에서 다룬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순례기 러시아편을 읽은 적이 있다. 러시아는 예술전반에 걸쳐 그 어느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월등한 문화예술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다. 문학에서 톨스토이를 비롯한 수많은 문인들이 배출되었고 음악에서도 차이코프스키에서부터 쇼스타코비치에 이르기까지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명곡들을 숱하게 접할 수 있다. 일찍이 세계적인 화가 샤갈이 태어났으며 또한 화가 칸딘스키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세계를 선과 색으로 표현하는 기하학적 추상화를 창시, 눈에 보이는 피사체만을 대상으로 하는 종래의 개념을 깨고 현대미술의 발판을 만들기도 했다. 그뿐인가. 볼쇼이 무용단 또한 어떻게 빼놓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여기에서 다 논할수는 없고 다만 에미르타즈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엄청난 문화유산에 대해 몇가지 감상을 얘기하고 싶다. 성 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은 화려한 바로크 건축물의 아름다움으로도 유명하지만 러시아의 여섯 황제가 살았던 이곳에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인 에미르타즈 미술관이 있어서 더욱 유명하다. 18세기 중반의 이 건축물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건축가 라스트텔리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바로크 건축미술의 표본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대목은 이 궁전 안에 세계의 진귀한 미술품들이 가득차 있다는 사실이다. 4백여개의 전시관을 일주일 동안 둘러봐도 현관정도나 감상한 셈이 될까. 카테린 여제에 의해 수집되기 시작한 미술품들은 선사시대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물경 3백만개의 작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물론 진열품 중에는 전리품으로 획득한 서유럽의 보물들 뿐 아니라 10월 혁명후 개인이 소장한 작품들까지 압수한 마티스, 르느와르, 고갱, 고호, 세잔 등 인상파 화가의 작품까지 망라, 가히 세계 미술품의 집대성이라 할만하다. 이렇게 된데는 여러가지 무리수가 따른 것도 사실이지만 러시아인들의 예술사랑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러시아에서 비록 사회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지만 한 여황제의 힘으로 이룩된 문화유산은 영원히 살아서 나라를 빛내주고 있음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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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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