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외국어의 바다에서 벗어나자

패션 분야를 담당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일 중 하나가 다름아닌 외국어와의 전쟁이다. 패션 종사자들에게야 쓰임이 자연스러운 ‘업계 용어’라지만 그대로 지면에 옮기기에는 생소한 말들이 적지않다. 하지만 우리말로 풀어 쓰려 하면 문장이 쓸데없이 늘어지거나 뜻을 분명히 전달하기 어려워져 되레 멈칫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한 게 사실이다. 우리말에는 있지 않는 뜻을 가져오면서 그들의 개념과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까닭이다. 화장품 분야도 다르지 않다. 외국계 화장품 회사에서 그들의 언어로 제품을 만드는 일까지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다분히 외국 화장품업계 경향을 모방해온 우리 업체들 역시 외국어 일색으로 상품군을 운영하고 있다. 브랜드 명 또한 주지할 필요도 없이 알아듣기 힘든 외국어의 물결이다. 그러다 보니 어르신들께 자주 받게 되는 질문 중 하나가 ‘도대체 이게 어디에 쓰는 어떤 화장품이냐’하는 점이다. 부스터, 세럼, 왁스, 아이 패치, 필링 키트…. 50대 이상에 다다르면 이들 모두를 구분하기 어려워한다고 보면 거의 틀리지 않다. 흔히 ‘리뉴얼’이라 부르는 새 단장을 거친 생활용품들의 경우 특정 ‘라인’전부의 용기 모양이 더욱 비슷비슷하게 디자인되는 게 요새 추세이기도 하다. 샴푸와 린스, 트리트먼트 등의 색깔과 모양이 사실상 같아진데다 브랜드 명만 강조하고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어떤 용도의 제품인지 알아보기가 영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노인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브랜드 명을 가리고 ‘샴푸’ ‘린스’라고 크게 쓴 종이를 붙여 사용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업체들이 소비자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온통 외국어로 자사의 제품을 도배하는 이유는 고객 인지도나 제품 이미지 제고에 있어 이 같은 전략이 더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새 단장 출시 때마다 이러한 경향이 짙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세상이 온통 비경쟁시장인 ‘블루 오션’을 개척하고자 전력하는 이때, 우리말 이름과 설명으로 점철된 기발한 상품은 왜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발상의 전환이 공전의 매출로 이어진다면 이제 경쟁력 있으면서 우리말로 된 제품이 나와 외국어 이름 일색인 제품을 장악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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