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알짜 기간산업 헐값 해외매각 막자"

국내자본에 '러브콜'<br>■ PEF출자분, 출총제 대상서 제외<br>M&A물량 향후 3년간 20兆 달해<br>현상태론 외국자본이 싹쓸이 가능성<br>재벌 문어발 확장 우려불구 고육지책<br>규제들 여전…대기업 참여는 미지수

“국내 사모투자펀드(PEF) 자금을 다 합쳐도 1조원이 안 되는데 매각기업 가격은 조단위를 웃돈다. 반면 외국계는 PEF 한 개가 2조~3조원을 쉽게 동원하는 상황에서 경쟁이 될 리가 없다.”(산업은행의 한 관계자) 금융감독위원회가 PEF 투자분에 대해 출자총액한도를 제외하기로 한 것은 국내 산업자본을 인수합병(M&A) 시장에 끌어들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재벌의 문어발식 기업확장 우려에도 불구하고 PEF를 활성화해 국내 기간산업을 외국계가 아닌 국내 자본에 매각하겠다는 뜻이다. 산업자본이 구조조정 기업을 인수할 경우 채권단으로서는 매각가격을 높일 수 있고 해당 기업으로서도 사업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앞으로 3년간 M&A 매물 최소 20조원=오는 2007년까지 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기업의 총 매각가격은 적어도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본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우해양조선ㆍ건설ㆍ인터내셔널ㆍ정밀 등 대우 계열사와 현대건설ㆍ하이닉스반도체ㆍ현대오토넷 등 옛 현대 계열사를 비롯해 SK네트웍스ㆍ인천정유ㆍ새한미디어ㆍ㈜쌍용ㆍ쌍용건설 등 채권단이 보유한 13개 구조조정 기업의 지분가치는 무려 17조7,208억원(27일 종가기준)에 달했다. 물론 채권단은 하이닉스ㆍ대우조선해양ㆍSK네트웍스 등 일부 기업의 경우 물량부담 등을 고려해 지분을 순차적 또는 일부만 매각할 방침이다. 하지만 M&A 대상 기업은 경영권 프리미엄이 시가의 30~40%에 달하는데다 동해펄프ㆍ대우일렉트로닉스 등 상장폐지 기업이 2007년께 매물로 나올 예정인 것을 감안하면 총 M&A 규모는 최소 20조원 이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기에 만도ㆍ외환은행ㆍ진로 등 외국계 소유 기업이나 우리금융지주ㆍ삼성생명ㆍ교보생명 등 정부 및 채권단 보유 지분의 매각가치도 12조6,000억원에 달해 앞으로 3년간 30조원을 넘는 M&A 물량이 쏟아질 수 있다. ◇PEF 활성화로 기간산업 방어=문제는 국내에서는 이 같은 알짜 기업을 인수할 만한 자본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칼라일ㆍ론스타 등 외국계 투기펀드들이 단기이익만 챙긴 뒤 되파는 행태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한 구조조정 기업의 채권단 관계자는 “외국계 자본은 극소수를 제외하면 차익실현이 목적”이라며 “국내 산업자본이 기간산업을 인수하면 사업 시너지 효과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이들 기간산업의 해외 매각은 중장기적으로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인수가격만 따지면 중국업체가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며 “그렇다고 매각 때 자본의 국적을 거론할 경우 당장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당하는 등 무역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 금융감독당국과 채권단은 대우조선해양ㆍ하이닉스반도체 등 국내 기간산업의 매각작업을 최대한 늦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 은행연합회는 구조조정 기업을 인수하려는 컨소시엄이나 투자펀드 등에 대해 자금 조성내역과 투자자 구성내역 등을 요구, 정체를 알 수 없는 투기자금의 참여를 막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는 국내 PEF가 외국계와 겨룰 만한 어느 정도 덩치를 키울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물론 이는 채권단에도 이득이다.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구조조정 기업을 제값에 팔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환성 현대증권 M&A실 부장은 “PEF의 수익성이나 안정성 등이 검증되지 않아 투자자들이 참여를 꺼리는 만큼 규모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규제완화와 더불어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산업자본, 금융업 인수는 불가능=이 같은 PEF 활성화 방안에도 불구하고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분리’라는 큰 틀은 바꿀 수 없다는 게 금융감독당국의 시각이다. 대기업집단이 10% 이내로 출자하더라도 최다 출자자이거나 의결권을 갖는 PEF의 경우 산업자본으로 간주돼 은행지분 소유를 제한하도록 한다는 것. 이 경우 재벌들의 금융사 인수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에 대해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PEF는 ‘사모(私募)’투자펀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외국처럼 투자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며 “정부가 각종 규제를 고집할 경우 PEF 활성화는 물 건너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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