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포퓰리즘이 국가흥망 가른다] <5> 그리스 - 이카루스의 추락

일 안해도 연금이 임금의 95%…과잉 복지가 몰락 불러<br>정치권 부패·탈세까지 만연, 국가부채·재정적자 눈덩이<br>소득 3만弗 자랑하던 나라 '세계경제의 골칫거리' 전락


지난 11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의 최대 번화가인 에르무(Ermou) 거리. 핸드백ㆍ화장품 등 세계 유명 브랜드 매장들이 여름 휴가철을 맞아 대규모 이벤트를 벌이며 고객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쇼핑거리는 한산하기만 하다. 길거리에 버려진 볼썽사나운 유기견들이 공포감마저 자아낸다. 재고물량을 털어내기 위해 50~70%의 떨이 세일에 나서고 있지만 손님들은 유리 전시장만 둘러볼 뿐 좀처럼 지갑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스와치 시계 매장에서 8년간 일하고 있다는 나타샤(28)씨는 "그리스가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 등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후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실제 아테네 시내를 포함한 아티카(Attica)지역의 경우 그리스 경제위기 이후 상점 문을 닫고 정리하는 비율이 15%에 달할 정도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자랑했던 그리스 경제는 태양 가까이 다가가겠다며 욕심을 부리다 밀랍 날개가 녹아 추락했던 이카루스처럼 그렇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스 경제의 몰락에는 망국적인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과 정치인들의 부패, 국내총생산의 24.7%에 달하는 지하경제, 유로화 강세에 따른 수출경쟁력 악화 등이 복합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방만한 예산운영으로 국가부채와 재정적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급기야 IMF와 이웃 EU 국가들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세계경제의 문제아'로 전락하고 말았다. 2001년 유로존에 가입한 그리스는 해외자본 유입과 대규모 지역개발로 고속성장을 이어갔다. 2004~2008년 연평균 성장률은 3.8%에 달했다. 이는 유럽지역에서 가장 높은 것이다. 하지만 양대 정당인 파속당과 신민주당이 선거철마다 정권을 잡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면서 '그리스의 비극'은 시작됐다. 대표적인 국책연구기관인 이코노믹리서치센터의 틸레마호스 에프시미아디스 수석 연구원은 "과잉 포퓰리즘으로 정부부채가 증가하고 국가경쟁력이 약화되면서 그리스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면서 "줏대 없는 정치인들을 뽑은 국민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포퓰리즘의 망령은 경제성장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2009년 성장률은 -2%를 기록했고 2010년에는 -4.5%로 더욱 악화됐다. 올해에도 2% 이상 마이너스 성장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 베니젤로스 거리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엘레니 데가이디씨는 "매출이 70%나 급감하는 바람에 2명의 직원을 내보냈다"면서 "정부가 국민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인기정책을 마구 내놓은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한탄했다. 서울로 치면 성북동 부촌(富村)에 해당하는 기피시아 마을을 택시를 타고 둘러보니 '점포 정리'라는 팻말을 내건 가구매장이 대거 매물로 나와 있었다. 그리스 포퓰리즘의 폐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바로 의료복지와 연금이다. 그리스 정부는 매년 100억유로 이상을 의료복지 부문에 지출하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 GDP의 5.8%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특히 관대한 연금제도는 재정적자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그리스의 임금 대비 연금액 비율은 평균 95%에 달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30.0%와 36.9%보다 세 배가량 높다. 인구 1,100만명 중 약 4분의1이 은퇴한 그리스에서 퇴직연금은 정부 재정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더구나 공적연금을 관리하는 민영회사들은 적자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로부터 돈을 보전받기 때문에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의 온상이 되고 있다. 그리스 연금단체의 한 관계자는 "연금신청에 허위와 위조가 많다"면서 "한 마을에서는 주민의 20%가 장애인 연금을 수령할 정도로 연금제도가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리스 최대 연금공단에서 펀드를 운영하는 로베르토 스피로풀로스 IKA-ETAM 펀드 책임자는 "사망한 가족의 연금을 계속 받아 챙긴 사람들을 기소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들 '유령'연금 수급자에게 연간 2,400만유로의 연금이 새어나갔다"고 설명했다. 그리스 정부는 인구고령화로 공적연금에 들어가는 예산이 2010년 GDP의 12%에서 오는 2050년에는 24%로 두 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고 연금제도 개혁에 돌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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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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