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자본시장 새패러다임을 찾아서] 11. 일본의 금융빅뱅

도쿄증시 무한경쟁시대 개막일본판 빅뱅의 영향으로 도쿄증권시장에 거센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동안 도쿄 증권시장하면 도쿄증권거래소(東證)를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증권업협회가 운영하는 장외시장인 점두(店頭)시장은 동증 상장을 위한 보조시장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일본판 금융백뱅의 근간이 된 금융시스템개혁법의 시행으로 점두시장도 거래소시장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게 됐다. 이전의 증권거래법은 증권거래소가 개설한 시장만을 유가증권시장으로 인정했지만 금융시스템개혁법은 증권업협회가 「점두매매 유가증권시장」을 개설할 수 있도록 규정, 거래소시장과 점두시장이 동등한 시장으로 건전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금융시스템개혁법은 증권거래소의 신설이나 거래소간의 합병요건을 개정, 외국계 증권사라도 새로운 증권거래소를 설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거래소 집중의무의 폐지는 일본에서도 전자거래시스템의 출현을 예고한다. 거래소 집중의무란 증권거래소 회원에 대해 채권을 제외한 상장유가증권의 거래소 외에서의 매매를 금지한 규정을 말하는데, 증권시스템개혁법에 따라 이 의무가 폐지됨에 따라 상장주식을 장외에서 매매시켜주는 전자거래시스템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금융시스템개혁법의 시행으로 일본 증권업계는 총체적인 개혁의 회오리에 휘말렸다. 증권거래소, 증권업협회, 기존 증권사와 신설증권사 들이 사활을 건 무한경쟁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이처럼 빅뱅의 한 가운데 놓인 일본 증권계에 다시 한번 충격을 던져 준 「사건」이 바로 미 나스닥의 일본진출이다. 지난해 6월 미 나스닥을 운영하는 나스드(NASD=전미증권업협회)가 일본의 소프트뱅크(사장 孫正義)와 공동으로 일본에 나스닥 저팬을 설립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일본금융계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 소란해졌다. 일본에서는 이를 제2의 「흑선」(黑船)이 나타났다며 막부(幕府)말기 일본에 상륙한 서양 함대에 비유하고 있다. 99년 6월15일 나스드의 프랭크 잡 회장과 함께 나스닥저팬 계획을 발표한 소프트뱅크의 손사장은 『나스닥 저팬에 주식을 공개하면 세계의 투자가를 대상으로 데뷔할 수 있다』며 일본의 벤처기업이 나스닥저팬 시장에서의 주식공개를 시작으로, 미국 나스닥시장에서도 주식공개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겠다고 밝혔다. 나스닥저팬의 거래방식은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지며 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비용의 삭감을 꾀하고 나스닥 시장에 등록된 주식도 일본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지난해 6월29일의 설명회에는 벤처기업대표 등 1,400명이 참가하는 성황을 이뤘다. 나스닥저팬은 지난 10월에는 신시장에 관심을 갖는 기업경영자를 회원으로 「나스닥저팬 클럽」을 구성하고 12월에는 오사카(大阪)증권거래소와의 제휴를 통해 신시장 개설시기를 2000년 말에서 오는 6월로 앞당기는 민첩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나스닥 저팬의 사에키 다츠유키(佐伯達之)사장은 『첫해에 100개사의 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 중 10%는 상업이나 수익기반이 확립된 대기업으로 채우고 있다』며 『도교증권거래소 상장기업도 나스닥저팬에 함께 공개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혀 점두시장 뿐 아니라 동증까지 긴장시켰다. 나스닥 저팬의 출현으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일본 주식점두시장을 운영하고 있는 일본증권업협회(日證協). 일증협은 나스닥저팬 계획이 발표된지 2개월만인 지난해 8월 「시장개혁의 행동개혁」을 발표, 등록 준비기간의 단축 및 마켓메이커 제도 개선 등 제도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일증협은 공개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 약 2만개 기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기초로 개별기업 방문을 시작했을 뿐 아니라 공개기준을 탄력적으로 운용해 사실상 대상기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점두시장은 인력이나 첨단 시장운용 노하우 등의 면에서 거래소나 나스닥저팬과 동등하게 경쟁을 할 수 있을지 내심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도쿄증권거래소 역시 팔짱끼고 지켜보고만 있을 처지가 못된다. 동증은 9월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적자기업이라도 주식공개가 가능한 새로운 시장 「마더스」(MOTHERS=MARKET OF THE HIGH-GROWTH AND EMERGING STOCKS) 창설 구상을 서둘러 발표했다. 우량 대기업의 등용문으로 인식돼 온 동증이 벤처기업 확보에 나섰다는 점만도 충분히 증권업계의 주목을 끌만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사장 이하 간부가 적극적으로 기업유치활동을 전개, 그동안 구청공무원처럼 사무처리를 한다고 비난을 받았던 동증이 이례적이라고 할만큼 빠른 속도로 11월에 개설을 마무리짓고 12월 하순에는 2개 벤처기업의 주식거래를 시작했다. 마더스의 신규 상장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시라하시 히로야스(白橋 弘安)과장은 『그동안 일본기업이 동증에 상장하기 위해서는 회사설립 이후 25~30년이나 걸려 벤처투자가 활성화되지 못했다』면서 『마더스는 과거 실적보다는 앞으로의 성장가능성을 중시, 상장기간을 대폭 앞당겼다』고 말한다. 마더스는 주식상장시의 시가총액이 5억엔 이상 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이익기준은 없다. 또 상장 심사기간을 1개월 정도로 단축하는 등 벤처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공개절차의 간소화를 꾀하고 있다. 시장간 경쟁의 본격화로 각 시장이 벤처기업 확보전에 돌입하면서 증권사들간의 벤처인수업무 쟁탈전 역시 치열하다. 최근 성장가능성이 높은 벤처기업에는 각 증권사의 인수담당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벤처기업을 둘러싼 유치전이 과열양상까지 보이고 있는데 대해 노무라종합연구소의 오사키 사다카즈(大崎貞和)자본시장연구실장은 『거래소와 전자증권거래시스템간의 중요한 차이점은 시장운용자가 상장, 공개기업을 선별해 적정한 주가나 시장환경을 정비함으로써 높은 신뢰성을 유지하는 일』이라면서『이와함께 주식 유동성 확보가 시장간 경쟁의 승패를 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오사키실장은 『앞으로 시장간 경쟁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과의 경쟁에 맞부딪치게 되고 또 해외기업의 주식까지 거래대상이 될 것』이라면서 『시장운영자는 글로벌한 관점에서 경쟁전략을 세워나가야 때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도쿄=장인영기자IYCH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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