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치판에 가려진 과학기술/조규하 과학문화재단 이사장(시론)

지금 당장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긴요한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 확산이다. 이미 시작된 국제기술경쟁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그 어이없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나 성수대교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TGV 고속철도의 차질없는 건설을 위해서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농민들이 경쟁하기 위해서도, 건강과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서도, 과학기술의 원활한 도입·수용·흡수·응용·창조적 개발과 그 확산은 문제 해결의 기본이다.그것은 고금동서의 역사가 가르치고 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어 그것을 바탕으로 통일이란 염원을 이룩한 독일의 사례에서도, 후진국 일본이 20세기의 1백년동안에 선진 일류국가가 된 사례에서도, 팍스 아메리카나의 주역인 패권국 미국의 사례에서도 우리는 그 힘의 기본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 사회적 확산이었음을 보게 된다. 구소련이 망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노멘클라투라(공산당원)의 과잉현상을 든다. 경제대국 미국이 후진국 일본의 추월을 당한 이유를 많은 사람들은 생산·창조자인 과학기술자보다도 많은 변호사의 상대적 과잉에서 찾고 있다. 일본의 기적은 과학기술의 도입·흡수·응용·개발의 결과였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일본은 앞선 서구 과학기술을 도입해서 응용하고 나아가서는 선진 과학기술보다 앞선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확산시키기 위해 근대화이후 1백여년동안 돈과 사람, 아니 국력을 총집결해왔고 그 결과 선진 대열에 서게 됐다. 과학기술은 정치·경제·사회·문화·군사·교육·복지의 중심과제였고 선진국이 된 오늘날에도 그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우리 한국이 왜 아직도 중진국에 머물러 있는가. 그것은 과학기술이 중진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전, 확산없이는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할 수도, 아니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도 없다. 그것도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우리의 제일 목표를 과학기술에 두어야 한다는 명제는 너무나 자명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들도 과학기술 혁신에 대한 정책 구상을 발표하는 일이 없고 선거권자인 국민도 그걸 물으려 하지 않는다. 어느 정당도, 정치가들도, 사회지도자들도, 경제지도자들도, 그들의 입에서 과학기술에 대해 한마디의 말이 없다. 그 많은 자금을 쏟아부은 농어촌대책이나, 쏟아붓기로 한 교육개혁에서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깡그리 무시되고 있다. 예산당국도 과학기술 발전과 그 확산을 위해서는 인색하기만 하다. 특히 정치의 계절인 지금, 정권의 향방만이 관심거리이지 정치판에 가려져버린 이 중요한 과학기술이란 정치적 과제는 후퇴에 후퇴만 거듭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자라나는 세대들은 쉬운 길을 가겠다고 이공계를 떠나고 있다. 이공계를 전공했던 머리좋은 학생들이 전공을 버리고 사시나 행시 준비를 위해 고시방으로 자리를 옮겨간다는 이야기는 이제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가 대접을 안하고 보수는 적은데 골치 아픈 그 어려운 과학기술을 누가 하려고 하겠는가. 기술고시마저 합격자 수도 줄여버리고 공무원사회에서 대접도 안한다고 한다. 기업에서도 과학기술자가 중역이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과학기술을 전공한 우수한 인재들이 미국가서 박사 학위를 받아와도 고급 실업자가 되는 판국이 되고 있다.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해야 하는가. 정치가가, 정부 고위 정책당국자가, 사회 지도층이 이 과제를 외면한다면 누가 생각하고 방법을 찾아 해결할 것인가. 인기가 없다고, 표가 없다고, 정치가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자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의 과학기술은 영원히 후진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후진국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 확산을 위해서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 일을 앞장서 해결해 가는 과학기술자를 스타로, 영웅으로 모셔야 한다. 우리의 발전과 복지 그리고 선진 일류화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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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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