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책과 세상] 착한 소년과 나쁜 소녀 40년 러브스토리

■나쁜 소녀의 짓궂음(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문학동네 펴냄)


처음에 나쁜 소녀의 이름은 '릴리'였다. 어느 날 사라진 릴리는 '아를레테'라는 이름으로 나타났고 이후 그녀의 이름은 '마담 아르누', '리처드슨 부인', 심지어 '구리코'로 바뀌었다. '나쁜 소녀의 짓궂음'은 201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2006년에 내놓은 소설이다. '착한 소년' 리카르도가 팜므 파탈의 전형인 '나쁜 소녀'에게 한 눈에 반한 후 신분을 바꿔가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무려 40년간 사랑을 이어간다는 내용이다. 짓궂은 꿀색 눈빛을 지닌 나쁜 소녀는 어린 시절에는 페루에서 외국인 행세를 하며 동네 아이들의 선망을 받았고 페루를 벗어나기 위해 게릴라 전사로 위장해 파리에 입성했으며 프랑스 외교관 부인이 되어 파리 사교계를 드나들고 영국인 사업가와 결혼해 상류 세계에 진입하며 급기야 일본 야쿠자의 애인이 된다. 인생의 목표가 나쁜 소녀와 함께 파리에 살아가는 게 전부인 리카르도는 나쁜 소녀가 수없이 모습을 바꾸는 과정을 보면서도 그녀에게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을 느낀다. 그녀는 그의 사랑에 반응하지 않으면서도 힘들 땐 그에게 달려감으로써 항상 그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 만들지만 결국 그를 절망에 빠뜨리고 도망간다. 착한 소년의 꿈과 나쁜 소녀의 욕망은 절대 함께 충족될 수 없다. 소설은 독재정권 치하에서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요구와 열망이 들끓는 1960년대의 페루의 모습부터 같은 시기 페루 혁명을 꿈꾸는 게릴라들이 모여있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 파리, 마리화나,팝 음악, 미니스커트 등이 탄생한 1970년대의 런던, 동양의 메트로폴리탄으로 꼽힌 도쿄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스토리를 이어간다. 소설의 장르를 묻는다면 단연 나쁜 소녀와 착한 소년의 만남과 이별을 그린 러브 스토리라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소설은 재치 있고 이야기가 풍부하며 재미있다. 하지만 작가는 영악하게도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어하는 나쁜 소녀의 욕망을 이용해 20세기의 세계 역사를 훑는다. 뉴욕 타임스는 이 작품을 "'마담 보바리'를 1960년대ㆍ1970년대ㆍ1980년대 도시에서 일어나는 현대적 러브스토리로 변형시켰다"라고 평했다. 40년 동안 계속되는 러브 스토리 속에는 프랑스 68혁명과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 히피 문화와 에이즈의 발견, 냉전시대의 종말과 독재정권의 횡포, 경제발전과 테러의 공포가 두루 담겨 있다. 작가는 러브스토리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마냥 가벼운 사랑 놀음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다. 1만 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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