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파이낸셜 포커스] 쓸 곳 많은데 돈 줄 더 말라 "속탄다"

■ 가을이 무서운 서민들<br>추석·2학기 학자금등 금융수요 피크로 치닫는데<br>은행 대출문턱 더 높아져 서민들 주름살 깊어져


"한 달 전에 상담할 때는 대출이 된다더니 지금은 안 된다는 게 말이 됩니까."(고객) "죄송합니다. 가계대출 관리 정책 때문에 심사기준이 강화됐습니다."(은행원) 23일 찾은 경기도 광주의 A은행 대출상담창구. 신용대출을 받으려는 고객과 은행원 사이에 고성이 한창이다. 결국 발길을 돌린 이 고객은 "신용대출을 받는 데 왜 사용처를 알려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생활 침해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은행의 대출상담 팀장은 "구체적인 용도와 상환능력을 꼼꼼히 심사하다 보니 대출을 거절당하는 고객이 평소 보다 20~30% 정도 늘었다"며 "신용대출의 경우 자신의 경제상황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 사용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계절이 가을로 들어서면서 가계의 '금융 수요'가 피크로 치닫고 있는데 정작 대출 문턱은 오히려 높아지면서 서민들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코앞에 다가온 추석 자금은 물론이고 2학기 학자금, 성수기를 맞은 이사철까지 돈을 쓸 곳이 줄줄이 이어지는 반면 한 번 조여진 돈줄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지난주 말부터 구체적인 사용처가 없는 신용대출 등 일부 신용대출을 중단했다. 기존 신용대출을 받은 고객들은 상환을 독려하고 있다. 더욱이 금융 당국이 대출 중단 행위를 하지 말도록 했음에도 시중은행의 돈줄은 여전히 말라 있다. 일부 대출을 중단했던 시중은행 광교영업점 관계자는 "지난 18일에 했던 조치는 다음달 1일까지 그대로 유효하다"며 "정부에서 재개하라고 했지만 종전 영업 전략은 그대로이며 다음달 1일에 본점에서 새로 조치가 와야 어떻게 될지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세자금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일부(거치기간 없이 즉시 분할상환 상품에 한해)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장 서민들은 3주 앞으로 다가온 추석이 걱정이다.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올해 서울 경동시장을 기준으로 조사한 4인 가족 기준 차례상 비용은 수해피해 탓에 23만8,200원으로 지난해보다 20.9%나 상승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신용대출을 받아 주식투자에 쓴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추석 준비 등 생활비로 쓰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마이너스 통장은 예상치 못한 의료비 등 가계운영의 유동성 확보 측면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또 다른 걱정은 2학기가 시작되면서 최근 대학들이 발송한 등록금 청구서. 학생들과 시민단체를 비롯해 정치권도 등록금인하를 줄기차게 외쳤지만 등록금은 단 한 푼도 줄지 않았다. 대학들이 1년 예산을 이미 책정했다는 이유로 2학기 등록금 인하를 미뤘기 때문이다. 두 명의 대학생 자녀를 둔 박모씨는 "등록금이 안 내려 이번에도 1,000만원가량의 돈을 준비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보태려 하는 데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줄인다니 잘 될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가을철 이사 성수기가 다가온 것도 걱정이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9, 10, 11월 전세자금대출 보증액은 1조6,533억원으로 연간 보증액 중 30%에 육박했다. 올 들어 전국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11%를 넘어서고 있어 올가을 '전세대란'이 재연될 것이 확실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전세금이 오르면 저축으로 충당하지 못한 부분은 대출을 더 받아야 하는데 이는 고스란히 이자부담으로 돌아간다"며 가계의 자금난이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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