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내일 모레면 쉰 살에 접어드는 한경희(사진ㆍ48)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하지만 나이 얘기가 나오자 대뜸 손사래부터 친다. 그는 “사업을 시작한 이후 정신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어느덧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면서도 “가슴속엔 30대의 열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스팀청소기를 앞세워 국내 가전시장을 평정하며 연매출 1,500억원대의 알짜기업을 일궈낸 한 대표. 그의 이름 석자 뒤엔 항상 ‘국내 대표 여성 CEO(전문경영인)’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런 한 대표에게 그의 30대는 ‘도전과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 한 대표는 젊은시절부터 ‘잘나가는 엘리트 여성’이었다. 학교 졸업 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근무하다 1996년에 5급 공무원 특채시험에 합격, 교육부 사무관으로 근무했던 화려한 스펙을 지니고 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한 대표가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가 그의 나이 서른 여섯이었다. 한 대표가 사업을 결심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두 아이를 둔 엄마로서 직장과 가사일을 병행한다는 게 제 아무리 ‘악바리’로 통하는 한 대표에게도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설거지며 청소, 밀린 빨래 등에 치이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고된 가사 노동의 연속이었다. 특히 걸레질은 그가 가장 힘겨워하던 가사일이었다. 무릎을 꿇은 자세로 엎드려 걸레질을 하다 보니 무릎이 까지기 일쑤였다. 걸레질이 끝나갈 때쯤이면 허리까지 콕콕 쑤셔왔다. 그때 한 대표가 떠올린 것이 스팀청소기인 ‘스티미’였다. 그는 “로케트를 만들어 우주로 보내는 시대에 스팀청소기 하나쯤 개발을 못하겠느냐는 생각에 대뜸 사업에 뛰어들었다”며 “한국에서 성공하면 비슷한 문화권을 가진 일본과 중국 시장도 손쉽게 평정할 수 있으리라는 해외시장 공략 계획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사업을 결심했을 때 주변의 반대가 심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누구도 한 대표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하지만 사업 초기 한 대표 역시 숱한 좌절을 겪어야 했다. 기대와 달리 사업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처음엔 5,000만원 정도 예상했던 사업 자금이 어느 순간 8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제품만 개발해놓으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갈 것’이라던 한 대표의 자신감이 무색할 정도로 판매망을 확보하지 못해 제품 시판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한 대표는 “사업이 그렇게 힘든 가시밭길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사업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당시 그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이 때 그를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주던 사람이 한 대표의 남편과 한 대표의 아버지였다. 집을 담보로 대출 받은 통장을 건네던 남편과 그의 아버지가 있었기에 한 대표는 ‘독하게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01년 스팀청소기 ‘스티미’를 출시했다. 스티미는 ‘주부들을 무릎 걸레질에서 해방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내 주부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 2005년에 연매출 500억원을 올리는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해에는 한경희생활과학이 국내 최초로 스팀청소기를 선보인 이후 10년 만에 스팀청소기 누적판매 1,000만대라는 대기록을 거두며 국내에서 스팀청소기 대중화를 이끌었다. 이후 한 대표는 ‘주부들이 행복해지는 제품’이라는 철학을 앞세워 출시하는 제품마다 줄줄이 히트상품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누구보다 주부들의 마음을 가장 잘 꿰뚫어볼 수 있는 ‘주부CEO’인 한경희대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현재 한경희생활과학은 스팀청소기 이외에 스팀다리미, 살균수제조기, 침구전용살균청소기 등으로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최근엔 마그네슘 프라이팬을 출시하며 주방용품 사업에도 진출했다. 국내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한경희생활과학은 미국과 중국에서도 ‘HAAN’이란 브랜드를 내걸고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경과 언어가 달라도 ‘주부들을 위한 제품’은 주부들이 먼저 알아보는 법. 한경희생활과학은 지난 5월 세계 1위 홈쇼핑 채널인 미국 QVC에서 ‘스팀청소기 듀얼스팀’을 런칭해 QVC홈쇼핑 일일 최고 매출액인 500만달러를 달성하기도 했다. 한 대표는 “미국 시장에서 꾸준히 제품 신뢰도와 인지도를 쌓은 결과 40만명의 충성도 높은 미국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며 “이러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번 듀얼스팀 신제품 역시 성공적인 런칭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또 지난해에는 미국 대형 할인점 체인인 타겟과 입점계약을 체결, 미국 내 1,750개 매장에서 스팀청소기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국내외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며 거칠 것 없어 보이는 한 대표이지만 “여전히 중소기업으로서 시장 확대에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대표가 활약하고 있는 가전 시장에서 항상 탄탄한 자본력과 기획력을 앞세운 대기업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대표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좋은 제품은 언제나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그의 신념 덕분이다. 한 대표는 “3~4년 전에 출시한 스팀다리미의 경우도 이제 막 시장 점유율 20%를 달성했을 정도로 차근차근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며 “중소기업이 공격적으로 홍보나 마케팅을 진행하기에 한계가 있는 만큼 더욱 제품력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 대표는 사업만큼이나 다문화가정 자녀 및 저소득층 자녀 후원 사업에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다. 한 대표는 지난 2005년부터 금천구 시흥, 경기도 고양, 충남 홍성에 다문화 가정 자녀와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공부방인 ‘한사랑지역아동센터’를 개설해 지원하고 있다. 한 대표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동들을 그대로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며 “사랑과 관심에 굶주린 아이들이 아동센터에 나오며 조금씩 세상과 소통해 나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벤처창업가를 꿈꾸는 20~30대 청년들에게 롤모델로 꼽히는 한 대표. 이제 ‘하늘의 뜻을 헤아릴 줄 안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앞두고 있는 그의 나머지 인생 계획이 궁금해졌다. 한 대표는 “경영자의 자리는 훌륭한 후임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내려놓을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눈이 침침해지고 기력이 다할 때까지는 끊임없이 제품 개발에 매진하고 싶다”며 “국내는 물론 전세계 주부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참신한 제품들을 계속 선보이고 싶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