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흐지부지된 '융합 인사'

"정부 내 칸막이가 관악산보다 높다는 말이 실감나네요." 기획재정부의 과장급 정기인사가 발표된 10일, 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푸념하듯 말을 꺼냈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이 유임 이후 첨단 인사시스템이라는 드래프트제(실ㆍ국장이 직접 적임자를 선발하는 방식)를 도입했다며 자화자찬 보도자료까지 내놨는데 정작 내부에서는 과거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 시절로 돌아갔다며 웅성대고 있다는 것이다. 불과 2년 전 재정부는 옛 재경부와 예산처 출신 관료들을 화학적으로 융합하겠다며 100여개 과장급 보직 중 30%를 출신별로 맞바꿔 배치했다. 사무관급에서도 100여명을 맞트레이드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작은 정부'를 강조하면서 통폐합한 여러 부처에서 공통적으로 시도했던 인사 실험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참여정부 시절 정부인사의 핵심 역시 교류였다. 부처 간 교류는 물론 일부 국장급 자리까지 민간에 개방하는 공모직을 도입해 경직된 관료조직에 새 바람을 넣고자 애썼다. 참여 정부 시절 인사교류와 공모직 도입이 성과 없이 유명무실해진 것처럼 이명박 정부의 부처간 화학적 융합도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되고 있다. 당장 대표적 통폐합 부처인 재정부가 그렇다. 부처 출범 초기 화학적 융합을 모토로 '상대조직'에 갔던 관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원대복귀'했다. 해당 인사들의 말을 빌리자면 "잠시 파견 갔다 온 셈"으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한 부처 내에서 실ㆍ국만 바꿨는데도 그 정도다. 지금은 재정부 밖에 있는 한 국장급 관료는 "그들은 그들의 방식이 있고 우리는 우리의 룰이 있다"고 거칠게 토로했다. 재경부와 예산처가 합쳐진 지 벌써 4년째지만 여전히 과천에서는 '○○○출신'을 따져가며 끼리끼리 문화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자기 출신 부하직원을 끌어주고 밀어주는 줄 세우기 행태도 여전하다. 정권 말기로 가면서 자신들을 챙겨줄 사람은 '정권 사람'이 아닌 '관료 보스'라는 걸 몸으로 체험한 이들이기에 교류도 융합도 겉으로만 흉내 낼 뿐이다. 마치 물과 기름을 섞은 뒤 흔들면 잠시 부서지며 섞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갈라지는 것처럼. 과거 정부가 그랬듯 이번에도 공직사회의 배타적인 칸막이 문화는 더욱 공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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