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스마일맨' 김형성, "상금왕 전선 이상무"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매주 숨가쁘게 이어지던 상반기 대회 스케줄에서 한 주의 공백이 주어진 지난 6월초 ‘스마일맨’ 김형성(28·삼화저축은행)을 만났다. 그러나 ‘인터뷰를 위해 연습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선수의 난색에 그를 찾아간 곳은 경기도 용인의 지산골프아카데미. 그렇게 ‘상금랭킹 2위’는 연휴에도 아랑곳없이 연습 중이었고, 그로부터 2주 후 상반기 마지막 대회인 몽베르오픈에서 또 다시 승전보를 전해왔다. 서울경제 골프매거진은 2006년 봄에도 그를 소개한 바 있다. 당시 김형성은 2부 투어에서 한 차례 우승하고 갓 정규투어에 데뷔한 KPGA 투어의 기대주였다. 기대주답게 그는 하반기에 첫승을 신고하며 상금랭킹 9위로 성공적인 루키 시즌을 보냈고, 2007년에는 17개 대회에 출전해 무려 9차례 톱10에 진입하며 상금랭킹 7위로 도약했다. 그리고 투어 3년차에 접어든 올해는 시즌 다섯 번째 대회에서 일찌감치 시즌 첫승을 기록한 데 이어 상반기 마지막 대회에서 1승을 추가했다. 상금랭킹 1위 황인춘(34?토마토저축은행)과의 격차를 600만원으로 좁힌 그는 두 달간의 투어 공백기 동안 해외에서의 치열한 전지훈련을 계획 중이다. 다음해 풀시드를 위해 상금랭킹 60위권을 목표로 했던 루키에서 2년 만에 상금왕을 다투는 정상급 스타로 돌아온 김형성. 그가 서울경제 골프매거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올해 시즌 2승을 기록할 수 있었던 상승세의 비결과 10년여 전 골프를 선택하게 했던 아버지의 한 마디, 군복무 중 ‘헬스 트레이너’ 후임병과의 만남, 세발낙지를 ‘올드보이’처럼 먹는 이유, 여자친구와의 결혼설에 대한 진상을 이야기했다. 다음은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7월호에 실린 인터뷰 전문. 올해 들어 지난해보다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고 있다.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나. 올 시즌 지난해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지난해에는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이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을 뿐 톱10에 9차례 진입했으며, 2006년부터 출전한 대회에서 한 차례도 컷 탈락하지 않았다. 그만큼 지난해 가장 좋은 해를 보냈고 올해도 비슷한 컨디션을 유지해왔다. 단지 시즌 초반에 우승을 기록하면서 심리적으로 여유를 갖게 됐고 그것이 경기에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시즌 첫승을 거둔 토마토저축은행오픈에서는 나흘 내내 선두를 지켰다. 완벽한 우승을 거둔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사실 올 시즌 대부분의 대회에서 최종일 우승조로 플레이했다. 서너 차례 우승 기회가 있었지만 욕심을 내면 우승에서 멀어졌다. 우승 직전 대회인 SK텔레콤오픈에서도 첫날 공동선두에서 둘째 날 단독 선두로 도약했다가 다시 밀리는 경험을 했다. 늘 마음을 비우자고 생각하지만 상대가 최경주 선배이다 보니 마음이 달라졌다. 주변에서도 모두 “최경주만 잡으면 너는 뜬다”라는 식으로 얘기했고, 유러피언투어에서 타이거 우즈를 제친 양용은 선배처럼 우승하고 싶었다. 그러나 최경주 선배는 세계랭킹 5위 선수가 아닌가. 비록 이기지 못했지만 이제 최경주 선배와 플레이하는 경험도 한 번 한 셈이다. 그런 부분에서 많이 배웠고, 바로 다음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다. 우승한 다음 주에 열린 매경오픈에서 컷 탈락했다. 2연승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나. 워낙 오랜만에 한 우승이어서 며칠 동안 축하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여기저기 정신없이 불려 다니다보니 피로가 누적됐다. 2연승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오히려 우승으로 만족하던 상황이었다. 계속 우승할 수 있다면 세계무대에 있지 않을까. 금호아시아나오픈에서 거의 우승을 확신한 상태에서 역전이 됐는데. 너무 방어적인 플레이를 한 것이 문제였다. 타수차가 많이 나는 선두라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볼을 치기 전에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내 스윙을 하지 못했다. 그날의 내 컨디션이나 페이스는 공격적이었는데 바뀌고 나니 실수로 이어졌다. 우승에 이어 2주 연속 준우승을 기록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최절정의 기량을 일군 비결은 무엇인가. 3년째 투어활동을 해오면서 단점이 하나둘 파악되었고 이것을 보완한 것이 주효했다. 특히 삼화저축은행과 지산골프아카데미 소속의 40여명 선수가 함께 다녀온 동계훈련 동안 지구력을 키운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7km 달리기를 하루도 빼놓지 않았고, 웨이트 트레이닝에도 하루 1시간30분씩을 투자했다. 예전에는 지구력이 떨어져 집중력이 흐트러졌지만 이제는 체력과 집중력이 향상된 것을 느낀다. 역시 체력관리가 선전의 비결인 것 같다. 지구력과 대조적으로 핸디캡이 있다면. 특별히 잘하는 기술은 없지만 특별히 부족한 것도 없어서 큰 실수가 없다. 드라이버샷 비거리가 280~290야드로 투어 평균이고, 대부분의 기술을 고루 비슷하게 구사한다. 데뷔 첫해의 우승은 자신감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 같다. 루키로 우승할 거라고 예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우승하기 한 달 전 제피로스오픈에서 처음으로 톱5에 올랐다. 그때 목표가 시드권을 얻게 되는 상금랭킹 60위였는데 이변이 없는 한 60위권을 유지하게 되는 성적이었다.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자 우승으로 이어졌다. 데뷔 첫승을 앞두고 긴장되지는 않았나. 5월에 열린 지산리조트오픈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때 챔피언조로 갤러리 앞에서 플레이했고 미디어와의 인터뷰도 진행해봤기 때문이다. 지산에서는 선두와 6타차였기 때문에 우승이 아니라 2위를 목표로 했었다. 그런데 1번홀에서 티샷과 두 번째 샷을 가장 잘하면서 욕심이 생겼고 그 바람에 결국 80타를 치면서 단독 2위에서 19위로 추락했다. 그 다음에도 몇 번 그런 경험이 더해지면서 마음가짐에 대해 다시 생각했고, 동반 플레이한 김종덕 선배도 ‘여유를 가지라’고 주문해 마음을 비우고 임했다. 선배와의 동반 플레이는 부담스러울 텐데. 오히려 편하게 대해주셨다. 바로 전 비발디파크오픈에서도 김종덕 선배와 같은 조로 플레이한 최진호가 데뷔 첫승을 기록한 전력이 있었다. 내가 우승하자 선배는 “나와 한 조만 되면 다들 첫승을 하나”라는 우스갯소리를 했을 정도였다. 아직 상금랭킹 1위로 치고 올라간 적이 없다. 하반기에는 상금왕에 도전할 것인가. 2위인 지금이 더 좋은 것 같다. 따라잡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페이스가 워낙 좋고 샷 감각도 뛰어나 컨디션만 잘 조절하면 기회가 올 것 같다. 투어에 익숙해지면서 국내 대회에서는 여유를 갖고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17세 때라면 비교적 늦은 편인데 골프를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었나. 시작할 때부터 골프가 재밌고 좋았다. IMF 경제위기로 집안이 어려워졌을 때 아버지의 한 마디가 골프를 다시 생각하게 했고, 군복무 기간 동안 골프에 확신을 키우게 됐다. 아버지의 한 마디는 무엇이었나. 평생 자식들에 경제적인 아쉬움을 모르고 살게 하셨는데 처음으로 골프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골프를 시작한 지 4년이 지나 세미프로가 되어있을 때였다. 얼마나 힘들게 꺼내신 말씀인지 알기에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말씀이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고 나는 골프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일부러 충격요법처럼 말씀하신 게 아닌가 싶다. 골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평범한 집안에서 고생을 모르고 자라다가 골프를 시작하면서 13년째 혼자 지내고 있다. 처음엔 고향인 부산을 떠나 골프아카데미가 있는 콘도에서 지냈는데 경비 문제로 인해 미아동 삼촌댁에서 기흥까지 매일 오가는 생활을 했다. 차 없이 전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고 하루에 2시간씩 걸리는 거리를 다니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런 고생 덕분에 지금껏 잘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골프는 혼자 하는 운동이라서 그런 부분을 아버지가 일찍 깨우쳐주신 것 같다. 정말 힘든 상황에서 스스로 대처하는 경험을 했고, 그런 트레이닝을 받아서 지금과 같은 성적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 운동선수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군복무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군입대를 생각했지만 군복무는 내가 훨씬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2년2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진로를 두고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고, ‘골프’로 방향을 잡은 후에는 복무 중의 여유시간을 활용해 체력적인 부분도 보강할 수 있었다. 군대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는데 운 좋게도 후임병 중에 헬스 트레이너가 있었다. 그 친구를 통해 내 근력에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도 알았고 전문적인 조언을 많이 받았다. 일부러 운동을 많이 시켜달라고 부탁해서 같이 달리기도 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2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운동만 하자 기초가 탄탄하게 다져졌다. 혼자 10년 넘게 살았으니 싱글 생활을 청산할 때도 된 것 같다. 프로골퍼 도미정 선수가 여자친구로 알려져 있는데. 주변의 소개로 만나 사귄 지 2년 정도 되었다. 우리에겐 골프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에 잘 만나온 것 같다. 투어활동으로 바빠도 이해해주고, 경기장에 와서도 플레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조심한다. 데이트는 대부분의 연인들처럼 평범하다. 시간이 날 때 같이 밥 먹고 영화 보는 식이다. 여자친구 말로는 요즘 나보다 더 잘 나간다는데 그런 모습도 귀엽다. 나이도 있고, 2년간 진실된 만남을 이어왔는데 결혼은 언제쯤으로 예정하고 있나. 우리는 만난 지 두세 달 만에 결혼한다는 소문이 나는 해프닝이 있었다. 김형태 형과 이름이 비슷해 ‘형제지간이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형이 2006년 겨울에 결혼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어느 대회에선가 모 아나운서가 방송 중 “올 겨울에 결혼하는 김형성 프로”라고 언급한 것이다. 나와 형태 형을 혼돈해서 그런 것이었지만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전국으로 보도가 나갔다.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상황이었고 부모님께는 소개도 못해드린 상태였다. 그런데 벌써 결혼을 한다고 해버렸으니 얼마간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을 한다고?”라는 주변의 반응을 접해야 했다. 그때는 여자친구도 힘들어했고 무명이었던 나도 별안간 구설수에 휘말릴 뻔했다. 아무튼 지금껏 잘 만나고 있다. 만학도로 경험하는 학교생활은 어떤가. 볼만 친다면 성적을 더 향상시킬 수 있을 것도 같지만, 학교는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 군대 가기 전까지 대학을 다녔었는데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편안하고 재미있다. 어제는 종강파티를 하면서 학과 동기들이 다 모였는데 평소 학번에 상관없이 모두가 나에게 말을 높이던 친구들이 술을 한 잔씩 하고 나자 좀 더 친근하게 대해줬다. 사진을 찍던 중에 요즘 유행하는 말로 “에이~, 2승밖에 못해? 4승으로 바꿔!”라고 말하며 웃음바다가 된 것이다. 여름은 체력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계절이다. 보양식으로 즐겨 먹는 것이 있다면. 산낙지를 좋아한다. 세미프로 시절이던 5년 전에 한 지인께서 산낙지를 사주시며 “산낙지 힘처럼 샷도 짝짝 달라붙어라”라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는데 우연치 않게 곧바로 2부 투어에서 우승했다. 그 우승이 정말 산낙지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실제로 맛있어서 잘하는 식당을 찾아다닐 정도로 마니아가 되었다. 단골로 가는 맛집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산낙지는 영화 ‘올드보이’처럼 먹어야 제격이다. 세발낙지를 자르지 않고 통째로 먹는 것이다. 요즘에는 집이 있는 신갈 쪽의 ‘효정낙지’에 자주 간다. 이렇게 소개하면 서비스 한 접시라도 더 주실지 모르겠다. 그럼 지금의 성적은 ‘산낙지의 힘’인가. 산낙지 외에 개장국도 많이 먹었다. 투어일정 등으로 부산에 내려갈 일이 있으면 아버지는 일주일치 분량을 준비해두신다. 손수 좋은 고기를 구해오셔서 요리하시는 것이다. 5월말 레이크힐스오픈 때도 캐디와 나는 일주일 동안 그것만 먹느라 혼났다. 나중에는 “아버지, 그만 먹을게요”라고 할 정도였는데 그럴 때면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산 억양으로)“무라!” 그런 아버지께서 요즘 많이 흐믓해하실 듯하다. 지난해 초 대장암 수술을 받고 많이 힘들어하셨고 나 역시 속상했는데 올해는 TV만 켜면 내가 나온다고 좋아하신다. 지금도 항암치료 중이시기는 하지만 아버지가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기쁘다. 고향에서 기록한 첫승 때는 더 특별했겠다. 그땐 아버지도 직접 오셔서 보셨다. 가족이 경기장에 오면 우승하지 못할까봐 속상해하신 적도 있는데, 이번 SK텔레콤오픈 때 나 모르게 인천까지 오셨는데 스코어가 좋지 않아서 “두 번 다시 안 온다”고 하신 후 바로 다음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다. 그래도 이번 부산 경기 때는 오셨다. 해외진출에 대해서도 계획하고 있을 텐데. 지난해 호주오픈에 출전한 후 해외 진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최경주 선배의 코치와 트레이너에게 레슨을 받았고 다른 많은 것을 배웠다. 미 PGA 투어 선수들이 20명 정도 출전한, 호주에서 가장 큰 대회에서 셋째 날 16위를 했다. 한국 선수들이 모두 컷 탈락하고 나만 남은 상황이었다. 롱홀에서 볼을 러프에 빠뜨린 후 앞쪽의 해저드로 인해 짧게 칠 수 없어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김형성 파이팅, 대한민국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만 명의 갤러리 중에 모여 있던 30여명의 한국교민들이 나를 발견하고 응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가슴이 뭉클했고 선수생활을 해오면서 가장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누구나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만 나 하나로 기뻐하는 교민들의 모습은 또 다른 동기가 되었다. 골프가 아니면 어찌 그런 경험을 했을 것인가. 나에게는 너무나 큰 배움이었고 해외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최경주 선수에게 골프에 대한 조언을 받았나. 한 조로 플레이하면서 선배에게 여러 가지를 여쭤봤다. 너무 많은 질문을 해서 성가셨을 텐데도 선배는 많은 조언을 해줬다. PGA 투어에 데뷔한 후 처음에 어땠느냐고 묻자 선배도 주눅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같은 홀에서 내가 버디를 하는 날도 있고, 상대가 보기를 하는 날도 있으니 그럴 이유가 없었는데도 주눅이 들었다며, 그 대회에서도 어느 홀에서는 내가 더 앞설 만한 기량이었는데 주눅 때문에 앞서가지 못한 것이라고 격려했다. “마음가짐을 다시 가지면 어디서나 통할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워준 선배로 인해 해외진출에 대한 각오가 새로워졌다. 구체적인 시기는 언제쯤으로 예정하고 있나. 해외 투어생활은 혼자 해나가기 어려우니 결혼 후 배우자와 같이 나가는 게 가장 좋다고 들었다. 군복무를 마쳤고 이제 결혼만 하면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결혼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게 없지만 서두를 생각이다. 내년에는 내가 ‘아홉수’에 걸리기 때문에 집안에서도 그 전에 하기를 바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