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재검표 소동이후] 국제금융시장 영향
선거판세 반영 '혼조'
미 대선이 사상 초유의 재검표 사태를 맞이한 8일(현지시간) 국제 금융시장은 불확실한 판세를 반영해 혼조 양상을 보이면서도 일단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의 승리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이날 미 증시에서는 나스닥 지수가 5% 이상 폭락한 가운데 제약, 담배, 석유, 건강보험주 등 부시 당선을 지지하는 이른바 '부시 친화주'들은 일제히 상승세를 탔다.
특히 필립모리스 등 9개 담배관련 회사의 주가를 반영하는 아메리칸 증권거래소의 담배지수는 52주만에 최고치를 경신하고 전날보다 2.2% 오른 265.12포인트로 장을 마감했다.
제약, 담배주 등은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관련 업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 한편, 부시 후보가 당선되면 주가가 오를 것으로 전망됐었다.
하지만 시장이 확신을 갖고 움직인 것은 아니다. '친기업' 성향을 지닌 부시가 당선되면 반독점 소송에서 상대적인 이득을 볼 것으로 여겨졌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경우 장 초반에는 부시 당선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오름세를 보이다가 결국 1달러 이상의 낙폭으로 내려앉는 등 혼조 양상을 보였다.
이밖에도 일부 종목을 제외한 대다수 주가는 대선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데 따른 불안 심리 때문에 상당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나스닥지수는 여기에 시스코 시스템스의 막대한 재고가 첨단분야의 공급과잉 우려를 불러일으켜 전날보다 5.3%, 184.06포인트 떨어진 3,231.70포인트에 거래을 마쳤다.
오전에 오름세를 타던 다우지수도 오후들어 하락, 45.12포인트(0.41%) 내린 10,907.06,에 장을 마감했다.
대선의 파장은 유럽ㆍ아시아까지 파장을 이어갔다. 상승세로 출발한 유럽 증시는 8일 플로리다의 재검표 소식에 일제히 주춤한 움직임을 보이며 소폭의 등락 속에 거래됐다.
9일 도쿄의 닛케이지수와 홍콩 항셍지수도 나스닥 폭락의 영향으로 개장과 동시에 각각 200엔, 220포인트 가량 급락하는 모습이었다. 전문가들은 대선의 최종 승패가 가려지기 전에는 각국 증시가 표류할 것으로 내다봤다.
외환시장도 일단은 판세가 부시 후보에 유리하다는 예상을 반영했다.
시장의 분위기는 유로화의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다. 미 언론이 부시 후보의 당선 소식을 전한 후 해외 시장에서 유로화 가치는 0.8517달러까지 하락, 결국 뉴욕 외환시장에서 0.8558달러에 마감되는 약세를 보였다. 유로는 9일 아시아 시장에서도 0.85달러대의 약세에 머물렀다.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부시 후보가 당선될 경우 미국이 유로화 부양을 위한 시장 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은 이미 시장의 정설. 외환 딜러들은 투자가들이 부시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치면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을 차지함에 따라 '강한 달러' 정책 지속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된 것도 외환시장의 움직임을 이끈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 일부에선 향후 부시ㆍ고어 후보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국제 금융계에 큰 영향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차기 대통령이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이상 대통령이 강도높게 경제정책을 추진하지는 못하지 않겠냐는 것. 대신 경제 및 시장 상황에 있어서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위상을 높이는 결과만 나타날 것이란 지적이다.
달러 강세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전망이 제기된다. 절반의 지지밖에 얻지 못한 대통령 아래선 달러 강세의 기반이 약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웰스파고 은행의 손성원(孫聖源) 부행장은 "대통령의 리더십 약화는 투자가들에게 불안을 야기하므로 결국 달러가 현재의 강세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경립기자
입력시간 2000/11/0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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