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사지마비쯤이야' 결혼도 하고 직업도…

척수손상 환자들, 사지마비 딛고 `활동적 생활'<br>`정상회' 모임 만들어 경험 공유..해외 여행도

척수손상으로 사지가 마비되었으나 결혼도 하고 직업도 가진 환자들이 있다. 바로 경수 4번 손상 환자들의 모임인 '정상회' 사람들의 이야기다. 경수 4번 손상은 가장 심한 형태의 척수손상으로 4번째 목뼈 부근이 부러져 아래쪽의 운동과 감각신경이 모두 마비되는 것. 환자는 얼굴과 목, 어깨 위쪽의 근육만을 움직일 수 있다. 정상회는 1997년 국립재활원 이범석 과장의 주도로 척수손상병동 작업치료실에서 첫 번째 모임을 가졌다. 처음에는 4명으로 시작한 모임이 이제 전국에 30여 명의회원을 거느린 모임이 됐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정기모임에는 서울과 경기도 근교에 사는 10여 명의 회원이자가용, 장애인 콜택시, 전동휠체어 등을 이용해 온다. 회원들끼리 가까운 근교 뿐만 아니라 섬이나 해외로 장거리 여행도 하고 연말에는 근사한 송년회도 한다. 오랜기간 모이다 보니 그 동안 회원의 결혼식도 3번이나 치러 냈다. 실제로 국립재활병원이 경수 4번 손상으로 입원했던 사지마비 환자들의 퇴원 후생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조사에 응한 15명의 환자들은 기대 이상으로 활동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먼저 결혼상태를 살펴보면 미혼이 7명, 기혼이 6명, 이혼과 사별이 각각 1명씩으로 이혼한 1명은 척수 손상 후 이혼했으며 기혼자 6명 중 3명은 사고 후 결혼했다. 직업 상태는 무직 10명, 구족 화가 2명, 웹마스터 1명, 레스토랑 운영 1명, 학생이 1명으로 5명에게 직업이 있었다. 15명 중 13명이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9명은 입으로 물고 하는 마우스 스틱을, 4명은 고개를 돌려 포인터를 클릭할 수 있는 헤드 마스터를 이용했다. 이들은 하루 중 평균 8.9시간을 침상 밖에서 지내고 1주일 중 2.8일 정도 외출하는 것으로나타났다. 다음은 사지마비를 딛고 활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정상회' 회원들의 척수손상극복기. ◇ 수술 11개월만에 인공호흡기 뗀 남모 씨 = 남씨는 7년 전 결혼 9개월 만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11개월째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을 때 담당간호사가 우연히 남씨의 자기 호흡이 돌아온 것을 발견했다. 보통 사람의 100분의 1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냘픈 호흡이었다. 이날부터 남씨는 호흡 훈련에 돌입했다. 처음에는 1분을 넘기기 힘들었지만 한달 뒤에는 호흡기 없이 10분 정도 버틸 수 있었다. 위험한 순간도 수없이 넘겼지만2년 전 4년 6개월 간의 병원생활을 뒤로 하고 퇴원했다. 지금은 밤에 잠자는 동안만 호흡기 마스크를 쓴다. 남씨는 "퇴원 한 지 2년이지난 지금 미래가 두렵기도 하고 연로한 부모님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매일 아침이기다리고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 카페 경영하는 이모 씨 = 이씨는 16년 전 결혼을 20일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날을 기억하고자 사고 날짜에 결혼식을 올렸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경기도가평에서 카페를 경영하고 있다. 이씨는 "돌아보면 고통과 좌절, 세상에 대한 원망도 많았다"면서 "이후의 삶도그리 평탄치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울고 웃으면서 살듯이 아내와 함께 울고 웃으며 살고 싶다"고 다짐했다. ◇ 구족 화가 황모 씨 = 황씨는 27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퇴원 한 지 몇 달이지나서 우연히 비슷한 처지의 구족 화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수소문을 해 만났다. 황씨는 "이런 몸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후에는 하루 모든 시간을 입에 붓을 물고 그림 그리는 재미에 흠뻑 빠져 살았다. 황씨는 1996년 25점의 수채화로 첫 전시회를 열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교회에서지금의 아내도 만났다. 처음에는 아내의 관심이 동정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삶이 결코 불행하지않다는 확신 때문에 용기를 내 교제를 신청했으며 2년 뒤 결혼식을 올렸다. 황씨는"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 컴퓨터를 통해 '문화혁명' 맞은 오모 씨 = 오씨는 1994년 교통사고로 사지마비 환자가 되었다. 오씨에게 컴퓨터는 한마디로 '문화혁명'이다. 아침엔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고영화감상을 한다. 낮에는 MP3 음악파일을 틀어 놓고 웹 써핑을 하면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하기도 하고 필요 없는 물건은 옥션을 통해 되팔기도 한다. 오씨에게 컴퓨터는 '친구이자 맘 편한 보호자'다. ◇ 웹마스터 김모씨 = 김씨는 1994년 교통사고를 당했다. 손을 전혀 못 써 직업을 구하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직접 사업을 하기로 하고 경추손상 장애우들과 함께 홈페이지 제작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열의만 가지고 무조건 덤벼들었다가 3년 6개월 동안 하던 일을 접어야하는 등 시행착오도 겪었다. 김씨는 "아직 수입은 많지 않지만 작업에 몰두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국립재활원의 이범석 과장은 "경수 4번 손상환자를 만나면 아무 것도 해 줄 게없다는 생각에 의사가 먼저 당황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과장은 "이들에게도 전동휠체어, 컴퓨터 사용법 등 적극적인 재활 치료와 주택개조, 결혼과 학업, 직업 상담 등의 퇴원 후 준비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과장은 척수 손상 환자들에게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자주 만나 서로 격려하고 마음속으로 장애를 받아들이며 열정을 쏟을 일을 한가지씩 찾으라"고 당부하면서"가족들의 따뜻한 지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정상회'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난 3월 '경수 4번 척수 손상인의 재활'이라는 환자와 의사를 위한 교육용 책자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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