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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Story] 오치영 지란지교소프트 대표
입력2011.12.09 16:48:00
수정
2011.12.09 16:48:00
보안업계 영원한 청년… "세계 100대 SW업체 진입 멀지 않았죠"
대학생 시절 삼성 SW멤버십 활동 1994년창업 2002년한때 고비도
'쿨메신저''엑스키퍼' 히트 잇달아 해마다 50%씩 성장세 '승승장구'
"100년 이상 가는 장수기업 꿈꿔"
'지란지교를 꿈꾸며'. 지난 1980년대 10대 시절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유안진씨의 수필이다. 지초(芝草)와 난초(蘭草)같이 향기로운 사귐을 주제로 했다. 여기에 착안해 자신의 일생을 바칠 회사 이름을 정한 이가 있다. 바로 지란지교소프트의 오치영(사진·42) 대표.
회사 이름을 지란지교라 지은 이유는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수필이 10대 시절 마음에 남긴 울림을 기억하고 싶어서다. 지란지교. 소프트웨어 회사와 궁합이 맞아 보이지 않는 이름이지만 계속 듣다 보면 왠지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하다. 지난해 오 대표를 만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란지교라는 이름이 매우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전히 10대의 마음으로 착한 기업을 꿈꾸는 보안업계의 영원한 청년 사업가인 지란지교소프트의 오 대표를 만나봤다.
지란지교소프트라는 이름은 여전히 귀에 낯설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3,700만 누리꾼이라면 지란지교소프트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자신도 모르게 이용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기업용 메일의 80%가량은 지란지교소프트의 스팸메일 차단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전국 초ㆍ중ㆍ고등학교에서 쓰는 '쿨메신저' 또한 지란지교소프트의 작품이다. 청소년들의 음란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는 '엑스키퍼'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은 보안업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업체로 인정을 받은 지란지교소프트지만 걸어온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시작은 1993년 당시 삼성전자에서 운영하던 소프트웨어 멤버십이었습니다. 컴퓨터 잘하는 대학생들을 모아두고 지원해주는 일종의 동아리방 같은 체제였는데 공부할 수 있는 방도 빌려주고 당시 150만원 정도 하던 최신 컴퓨터를 마음껏 쓸 수 있게 해줬죠. 심지어는 왕복 차비로 매월 10만원이 넘는 용돈을 주기도 했습니다."
오 대표는 소프트웨어 멤버십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까지 자신이 PC를 제일 잘 다루는지 알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모인 인재들을 보니 '역시 강호에는 고수가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들과 함께라면 뭘 해도 할 수 있겠단 확신이 들었다. 당시 소프트웨어 멤버십에 같이 참가했던 동료 3명을 설득해 1994년 만든 업체가 바로 지란지교소프트다.
다만 그에게도 창업을 결심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소프트웨어 멤버십 출신을 우대하는 삼성전자에 입사하려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다. 그렇지만 주위의 만류가 많았다. 오 대표 본인 또한 확신이 서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는 그럴수록 자신은 꼭 창업을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주위에 말하고 다녔다. 자신의 신념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남들은 허풍선이처럼 봤을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제 스스로에게 채찍질이 필요했거든요. 말을 허투루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말을 하면 할수록 창업에 대한 확신은 강해졌습니다."
그러한 확신은 그를 창업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에게 다시 태어나도 창업을 할 것이냐고 묻자 다소 망설이는 분위기다.
"만약 제가 2011년의 27세라면 창업에 대해 많이 고민할 것 같아요. 창업은 매우 매력 있지만 너무 위험이 큽니다. 100명이 창업을 한다고 하면 현상유지하는 사람은 30명이 채 안 되고 이중 수익을 내는 곳은 10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보면 됩니다. 다들 열심히 하고 실력도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사업으로 성공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도 운이 많이 따랐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열심히 해서, 내가 잘나서 지금까지 사업을 잘 꾸려왔다는 생각이 안 들고 점점 겸손해 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는 1994년 창업 이후 속된 말로 매우 잘나갔다. 2000년에는 모 경제지에서 뽑은 유망 벤처기업 1위에 뽑히기도 했다. 오 대표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명예였다. 이 덕분에 오 대표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은 곳에서 연락이 오고 수많은 매체에서 인터뷰 기사가 나갔다. 지란지교소프트에 투자를 하겠다는 창투사도 많았고 그와 친해지기 위해 손을 뻗는 이도 줄을 섰다.
당시 오 대표는 자신이 매우 잘났기 때문에 이러한 관심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실제 마음만 먹으면 100억원에서 200억원 정도는 증자를 통해 쉽게 모을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기업공개(IPO)에 대한 욕심이 났다. 이를 위해 사람을 무리하게 뽑았으며 투자도 공격적으로 했다. 문제는 외형이 커지는 반면 내실은 점점 허약해지는 데 있었다. 내부 관리나 위험관리가 안되고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모두가 기대하고 박수쳐주 듯 다 잘될 것 같았다.
"2002년 말에 돈이 다 떨어졌어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당시 제가 보고 싶은 현실만 본 것 같아요. 2002년 종무식 때 직원들을 대상으로 급여를 줄이고 사람을 줄이겠다고 밝혔죠. 100명에 가깝던 직원이 50여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업을 하면서 눈물을 흘려봤습니다."
그 이후로 오 대표는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다시는 자신의 꿈 때문에 제 가족 같은 직원들을 회사에서 내보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현금 흐름에 대해서도 예전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다. 회사는 비용절감을 위해 잠실에서 강남으로 옮겼으며 면적은 이전의 절반에 불과했다. 대전에 있던 사옥은 팔고 직원복지는 아예 생각도 못했으며 급여를 못줄 때도 많았다. 그렇게 5년을 버티다 보니 2008년 매출 100억원을 달성할 수 있었다. 2011년 현재 직원은 150여명에 이른다.
"힘들었지만 돈을 버는 즉시 다시 재투자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매출 100억원, 세계 100대 소프트웨어 업체, 100년 동안 갈 수 있는 회사를 만들자는 꿈이 사업초기부터 있었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매출과 관련해서는 꿈을 이뤘습니다. 이제 100대 소프트웨어 업체를 향해 발로 뛰어야죠. 매년 50% 정도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몇 년 내로 100대 소프트웨어 기업 진입도 가능할 것이라 봅니다.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처럼 모두가 안 된다 만류했지만 결국 그 거위의 꿈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지란지교소프트의 창립 100주년 기념식을 꿈꾸고 있다. 지란지교라는 이름처럼 서로의 향기로 지인을 감싸고 세상도 따스하게 만드는 그런 회사 말이다.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그는 회사의 영업이익 1%를 매년 결식아동 돕기나 해외의 가난한 어린이 돕기 등에 기부하고 있다.
그렇게 묵묵히 제 할 일하며 주위만 보듬을 것 같은 그 또한 정부에 하고픈 말이 있다. 바로 더 많은 사람들이 꿈과 열정을 가지고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미국과 같은 해외 사례를 보면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이를 기반으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패자부활'의 기회가 제공돼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업에 실패할 경우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부채가 한번에 지워지게 되죠.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사람까지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많고요. 사업하는 사람들이 항상 노심초사하고 전전긍긍하는 이유입니다. 한번 쓰러지더라도 다시 한번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회,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이 되는 사회를 꿈꾸고 있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제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그렇게 만들기는 힘들 것 같아요."
오 대표는 지란지교소프트가 다양한 사람들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디딤돌이 되면 좋겠다며 특유의 소탈한 웃음과 함께 말을 맺었다. 다소 산만한 그의 사무실 구석에 자리한 난처럼 번잡한 세상 속 하나의 향기가 되기를 오 대표는 오늘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 오치영 대표는
▦1969년 대전 ▦1988년 대전고등학교 졸업 ▦1994년 지란지교소프트 창업 ▦1995년 충남대 졸업 ▦2001년 중소기업청 신지식인 선정 ▦2009년 지식경제부 장관 표창 ▦2010년 지식정보보안산업협회 수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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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드서핑 등 운동 즐겨… 유머감각도 뛰어나
■ 오치영 대표 젊음 유지 비결은
오치영 지란지교소프트 대표는 업계에서 젊은 최고경영자(CEO)로 통한다. 나이는 이미 40세를 넘었지만 대학생 시절 창업했다는 젊은 이미지 외에도 특유의 열정과 패기 때문이다. 그를 실제로 만나보면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으며 악수를 나눌 때 전해지는 꽉 다문 손길의 힘은 주위 사람에게도 좋은 기운을 불어넣는 듯하다. 이렇듯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고 활기찬 오 대표만의 매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저는 운동을 매우 좋아합니다. 윈드서핑이나 골프는 평소에도 자주하며 올해는 스킨스쿠버를 시작해 얼마 전에는 관련 자격증을 땄어요. 농구 동아리에도 가입해 2주에 한번씩 2시간이 넘도록 코트를 뛰어다닙니다."
그가 이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바로 '체력'도 '실력'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강한 체력은 그가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자랑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정말 일을 많이 합니다. 갖고 있는 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꿈에서라도 답을 찾으려고 하죠.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다 보니 항상 마음은 긍정적입니다."
학구열 또한 그의 젊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의 사무실 벽면에는 수백권의 책이 놓여져 있다. 그는 속독 기술을 배워 발췌독을 통해 많은 정보를 빠르게 습득한다. 그가 읽은 책들은 그에게 여전히 많은 영감을 준다.
얼리어답터이기도 하다. 새로운 기기가 나오면 일단 손에 쥐고 봐야 한다. 아이패드가 처음 출시됐을 때도 미국에서 귀국을 준비하고 있던 있는 회사 직원에게 부탁해 아이패드를 단 하루 만에 손에 쥐기도 했다. 아이폰 또한 국내에 출시되기 전인 지난 2008년 일본에서 들여와 갖고 다녔으며 갤럭시탭은 국내에 출시되기 전에 말레이시아에서 공수해와 사용했다. 인터뷰 때도 얼마 전에 샀다는 갤럭시 노트를 만지작거리며 디지털 문명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새로운 기계를 완벽히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요. 그렇다고 그 기계에 완전 빠지지는 않지만 일단 그 기계를 완전히 손에 익을 때 까지 써봐야 직성이 풀립니다. 새로운 트렌드를 파악하는 데도 좋고요."
특유의 낙천성과 유머감각도 젊음의 비결이다. 그의 방에 걸려있는 'Oh CEO Bang'이라는 명패는 그의 유머감각을 대변한다. 이 명패를 처음 본 사람들은 당연히 '오(Oh) 대표(CEO) 방(Bang)'으로 읽기 마련이다. 하지만 회사 직원들을 이를 '오서방(Oh CEO Bang)'으로 읽는다. 그의 언어유희다.
"예전부터 친구들이 오서방이라고 저를 불렀어요. 제 트위터 아이디도 '@OhCeoBang'방이에요. CEO를 대표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냥 발음 나는 대로 '서'라고 읽어도 되잖아요."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화가의 그림 옆에 초등학교 5학년 딸이 그린 '아이유' 그림을 붙여 둔 엉뚱하면서도 자상한 오 대표. 그의 젊음은 이러한 엉뚱함과도 맞닿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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