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KIC, 메릴린치 추격 매수로 또 손실

4년간 투자에 수익률 -76%… "국부펀드로 키워야 하나" 의문<br>감사원 "경영진 문책" 지적에도 정부·KIC 제식구 감싸기 급급

한국투자공사(KIC)가 올 들어 메릴린치를 추격 매수해 또 대규모 손실을 본 과정을 들여다보면 국민 입장에선 복장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국제적 '봉'으로 전락한 KIC에 400억달러 이상을 맡기며 한국의 국부펀드로 계속 육성해야 하느냐는 근원적 의문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지난 2008년 1월 이후 지금까지 BoA메릴린치에 대한 KIC의 투자수익률은 -76%, 손실액은 16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민의 피땀이 담긴 외화자산이 대규모로 손실을 봤지만 책임지는 관료나 기관장은 없고 정부나 KIC도 제 식구 감싸기에만 급급하다. 정부는 외환보유액 및 공공기관의 여유자금이 늘자 2005년 7월 국부펀드로 KIC를 설립, 해외투자에 나섰다. KIC는 설립 초 선진국 채권 등 안정적 상품에 투자하다 2007년 하반기부터 사모펀드 등 위험성이 높은 상품에도 손대기 시작했다. KIC의 첫 공격적 투자 대상이자 야심작은 2008년 1월 20억달러를 쏟아 부은 메릴린치. KIC는 메릴린치에 투자하며 "투자처를 다양화하고 글로벌 자산운용사로 도약할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평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고 미국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메릴린치 주가는 폭락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330억달러에 흡수 합병됐다. KIC의 메릴린치 지분가치는 반토막이 났고 일부 감자로 주식 수도 줄었다. 감사원은 지난해 KIC 감사에서 "메릴린치 투자로 8억달러 이상 손실이 났는데 위험에 대한 별다른 검토도 없었다"며 홍석주 전 KIC 사장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하고 감독을 태만히 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국장급 간부를 엄중 인사 조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KIC는 지난해부터 BoA메릴린치 주가가 회복세를 보이자 당초의 장밋빛 환상에 다시 빠져들었다. 10달러를 밑돌던 메릴린치 주가가 20달러에 육박하자 매입원가인 29달러가 회복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메릴린치 주가는 20달러를 돌파하지 못하고 또 미끄러졌다. 감사원 감사마저 끝나자 KIC는 물타기로 메릴린치 손실을 만회할 셈으로 올 초 주가 회복세를 틈타 본격적인 추가 매수에 나섰다. 하지만 올 1월 중순의 고가가 소위 '상투'였다. 이후 메릴린치 주가는 슬금슬금 떨어지다 8일 6.31달러로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국제투자 경험이 부족한 한계를 감안해도 KIC의 투자행태는 낙제점을 면치 못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위기로 외화 한푼이 금쪽 같은 상황에서 정부와 KIC는 사실상 혈세로 조성된 국부의 대규모 손실도 '병가지상사'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KIC는 감사원이 두 차례나 전 경영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하라고 했지만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일축했다. 금융위원회도 감독태만의 비위전력을 문제 삼아 감사원이 인사 조치를 하도록 한 국장급 간부를 미국 워싱턴 DC의 세계은행 이사로 사실상 영전시켰다. 정부와 KIC는 건별로 투자실패를 따져 책임자를 문책하면 소신껏 일하는 사람은 없고 절차만 따지게 돼 세계적 국부펀드를 일굴 수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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