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로 생산과 수출, 물가, 성장 등 경제의 모든 부문이 타격을 입어 어렵사리 햇살이 비칠 것 같던 앞날이 다시 어두워졌다. 사실 우리 경제는 지난 상반기동안 사스와 노사분규 등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고, 하반기들어 세계경제회복세와 함께 점차 `심리`도 호전되는 듯한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가을의 초입에서 불어닥친 `매미`의 강한 돌풍으로 다시 한번 고비를 맞게 된 것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재해에 대해 올해도 정부는 금융이다, 세제지원이다하며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다른 부문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악순환을 끊지 않는 한 우리경제에서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발전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성장률 2%대 하락 우려=`매미`의 후유증은 당장 성장률을 위협하고 있다. `매미`가 급습하기 전까지 예상했던 3ㆍ4분기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2.7% 수준이었다. 태풍이 없었다고 해도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던 이 같은 성장률 전망치는 태풍으로 달성하기가 더욱 힘들게 됐다. 지난 2ㆍ4분기 1.8%성장에 그친 데 이어 조심스럽게나마 경기회복이 예상되던 3ㆍ4분기의 성장이 좋지 않게 나온다면 연간 경제성장률도 정부가 목표한 3%대 초반이 아니라 2%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성장률이 나빠지면 고용과 투자도 어렵게 돼 경기침체라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4ㆍ4분기부터는 경기회복세가 뚜렷해질 것으로 전망하지만 3ㆍ4분기 성적이 당초 예상을 밑돈다면 하반기는 물론 내년 경제운용에도 큰 부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균형재정 1년만에 흔들=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건전한 재정기조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2004년도 예산을 편성하면서 공적자금 상환일정까지 연기해가며 자금을 끌어 모을 정도로 빠듯한 나라살림이 태풍으로 더욱 궁핍해졌다. 물론 천재지변 등에 대비하기 위해 책정한 예비비 1조5,000억원이 남아 있다. 하지만 수해복구에 이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갈 경우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돈을 빌리는 것 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다. 적자 국채 발행은 그대로 적자재정으로 이어져 2002년 반짝 균형을 달성했던 재정기조는 적자로 돌아설 수 밖에 없다. 98년 외환위기 이후 단 한 해만 제외하고 적자재정에서 헤어나지 못할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기획예산처 당국자는 “재정이 한번 적자를 내기 시작하면 균형재정을 이루기가 사실상 힘들어지고 국가신용등급 등 국가신인도에도 악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그래서 정부는 그동안 어떤 식으로든 적자국채발행을 피해왔지만 천재지변에는 어쩔 수 없게 됐다”며 적자재정을 사실상 용인할 뜻을 내비쳤다. 현재로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 패해 복구가 예비비 한도 내에서 이뤄지는 경우 뿐이다. 피해규모 집계 결과는 약 2주일 후에 나오지만 예산처는 `예비비 한도내 복구가능`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태풍이 한두번 더 온다는 소식이고 보면 건전재정 유지를 위한 노력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나라살림의 구조가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형태라는 점을 이번 비가 다시 확인한 셈이다.
◇성장동력 상실 우려=가장 우려되는 것은 우리경제가 세계적인 경기회복 국면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해복구와 항만기능 손상에 따른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성장률 둔화가 투자부진과 고용불안, 내수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세계경제의 동반회복세에서 뒤쳐진다면 소규모 개방형경제인 우리경제는 수년을 더 노력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경제가 일시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태풍으로 농수산물 등의 피해가 속출해 농수산물 가격과 음식료 및 서비스가격이 상승하는 반면 성장률은 떨어지는 구도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일부 농수산물의 수급구조가 악화하면 우리경제는 일시적으로나마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며 “투자부진과 일부 지역의 부동산을 제외한 자산가격 하락(디플레이션)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면 경제의 예측불가능성과 불안정성도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국민들에게 어려운 상황을 솔직히 털어놓고 범국민적인 협조와 국민적 단결을 호소하는 것 외에 방안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구찬기자,최원정기자 abc@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