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부검기술 "머리카락으로 사망자 거주지도 파악"

첨단과학 활용해 갈수록 진화<br>모발 동위원소 분석 최근 방문지도 알수있어<br>치과 X레이 진료기록 DB화 신원 몇분만에 확인<br>뇌 'MRS 영상장치'로 촬영 사망시간 추정 가능<br>안구속 '탄소14' 양 통해 출생연도·나이 밝혀내

시체는 살아 있을 때의 상태와 사인에 대해 엄청난 정보를 간직하고 있다. 첨단과학의 힘을 빌린 최근의 부검기술은 기존에 알 수 없었던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몸에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많은 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처럼 죽은 자의 진실을 밝혀내는 게 바로 부검(剖檢)인데, 최근 첨단과학의 힘을 빌려 한층 정확하고 신속하게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기술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이를 활용하면 정확한 사망시간이나 사인은 물론 사망자가 살았던 거주지나 여행했던 지역, 출생연도에 이르기까지 기존에 알 수 없었던 많은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 흔히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법의학자, 그 중에서도 사체의 부검을 전문으로 하는 부검의들에게 이 말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사망자의 몸에는 생전의 상태와 사망원인 등에 대한 막대한 정보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시신의 손톱이 파랗고 울퉁불퉁하면 그 사람의 사인은 헤로인 과다복용이다. 또한 피부가 비늘처럼 벗겨진다면 비소중독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법의학자들은 아주 평범한 부검만으로도 살인사건과 같은 강력범죄의 해결에 도움이 될 중요한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 같은 부검기술 또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 개발된 기술들은 한층 정확하고 신속하며 신뢰성이 높다. 게다가 과거에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정보들도 제공해준다. 머리카락 한 올로 거주지 파악 지난 2월 미국 유타대학 연구팀과 과학분석기업 이소포렌식스사의 연구자들은 사람의 모발에 그 사람의 식습관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모발 속의 산소와 수소 동위원소 숫자를 분석한 결과 어떤 지역의 물을 마셨는지에 따라 이들의 비율 변화가 현격히 나타난 것. 이 기술을 활용하면 신원미상 사망자의 최근 거주지를 찾아냄으로써 신원파악의 가능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또한 이 기술은 모발의 주인이 최근 어느 지역을 방문했는지 등 이동경로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모발의 뿌리 부분은 최근 머물렀던 장소, 끝 부분은 과거에 머물렀던 장소의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미 미국 전 지역의 물을 수거해 동위원소 분석을 마쳤는데 얼마 전 미국 솔트레이크 카운티의 한 보안관이 이 데이터를 사용해 성과를 올렸다. 2000년 발견된 여성 변사체의 신원을 밝혀낸 것. 이소포렌식스의 설립자이자 유타대학의 생태학자인 짐 일러잉거 박사는 “모발 한 올만으로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1년여 동안 그 사람이 어느 곳에서 생활했었는지 알 수 있다”며 “동위원소 분석기술은 법의학 외에도 인류학ㆍ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밝혔다. 치과기록 찾아 몇 분 만에 신원 밝혀 치아의 모양으로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은 로마시대에도 있었을 만큼 오래된 기술이다. 지금도 많은 국가에서 신원미상 사망자의 치아와 치과 진료기록을 대조해 신원을 밝혀내고 있다. 하지만 기존에는 사망자의 치아 X레이 사진과 치과기록 데이터베이스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대조해야 하는 등 많은 인적자원과 시간을 투입해야 했다. 최근 일본 가나가와 치의과대학 연구팀이 선보인 치과기록 검색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이렇게 지루한 과정이 필요 없다. 컴퓨터가 단 몇 분 만에 진료기록 데이터베이스에서 사망자와 일치하는 치아 X레이 사진을 찾아주기 때문이다. 이는 수작업에 비해 무려 95%나 빠른 속도다. 특히 치아 X레이 필름에 나타날 수 있는 이미지 왜곡까지 보정해줘 정확도가 육안에 의존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다. 이 대학의 에이코 고수게 박사는 이 소프트웨어가 여객기 추락, 지진, 쓰나미 등 대형 참사에서 최고의 효용성을 발휘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수백,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형 사고에서는 신원확인에만 수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조사자들의 실수 가능성도 높다”며 “치과기록 검색 소프트웨어는 신속성과 정확성을 동시에 담보해줄 최적의 법의학 도구”라고 설명했다. 뇌를 읽으면 사망시간 보여 정확한 사망시각 및 사후경과시간의 추정은 부검의 첫 단계이자 사건 해결의 시발점이 되는 중요한 자료다. 하지만 이는 법의학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부분의 하나다. 대개 사망시각과 사후경과시간은 간의 온도, 사체의 경직도, 부패 정도 등을 보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 같은 생체학적 변화들은 주변 온도에 지대한 영향을 받기 때문에 보편타당성이 떨어진다. 경험이 많은 법의학자조차 사망 후 3일 이상 지난 사체의 경우 사망시각을 제대로 알아맞히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스위스 베른대학 산하 법의학연구소는 자기공명분광(MRS) 영상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사망자의 뇌를 MRS 영상장치로 촬영, 뇌 세포의 분해 정도를 판독하는 방식으로 사후경과시간을 추정하는 것. 이렇게 하면 온도라는 변수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최대 사망 후 3주가 지난 사체의 사망시각까지 정확히 추정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지난해 말 중국 화중과기대학 동제약학원의 법의학연구소 또한 토끼의 뇌를 수소양자 MRS(1H-MRS)로 촬영한 결과 콜린 등 몇몇 물질들이 사망 후 온도에 관계없이 일정한 수준의 감소 혹은 증진을 보였다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출생연도 알려주는 눈 사망자의 뇌에 사망시각 정보가 담겨 있다면 안구 속에는 출생연도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눈의 수정체 렌즈를 구성하고 있는 크리스탈린(crystallin)이라는 투명 단백질과 방사성 동위원소인 탄소14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연구팀은 올해 초 대형 핵 가속기를 사용해 크리스탈린 속의 탄소14를 측정, 신원미상 사망자의 나이를 정확히 밝혀내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모든 사람은 음식을 통해 소량의 탄소14를 섭취하는데 대부분의 인체조직은 끊임없이 재생되는 반면 크리스탈린은 1~2세 때 한번 생성되면 평생 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크리스탈린에 축적된 탄소14의 양을 확인함으로써 정확한 출생연도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연구팀의 닐스 리너럽 박사는 “이 방법으로 지난 1년6개월 동안 총 13명의 사망자 나이를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며 “특히 기존 탄소연대 측정법은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 방법은 최대 18개월 이내에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메리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미국 미네소타의 메이요 클리닉에서는 최근 40세 이상의 돌연사 사망자들을 대상으로 한 부검에서 이들 중 3분의1의 사망원인이 ‘롱 QT 증후군(LQTS)’이라고 불리는 유전적 심장질환 때문이었음을 밝혀냈다. 이는 부검을 통한 유전성 사인 판독의 새 장을 연 획기적 연구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사망자의 가족에게 유전질환의 존재를 알려 또 다른 피해자 발생을 막을 수 있게 됐다.
부검의 역사
□BC 300년 그리스의 의사였던 에라시스트라투스와 헤로필루스가 인체 장기와 신경의 작동원리를 파악하기 위해 사형수들의 시신을 해부함으로써 부검의 효시를 마련했다. 이후 2세기에 이르러 로마의 유명 의사였던 클라우디우스 갈렌 등이 그동안 확보된 해부학 정보들을 환자의 증상과 연관 지어 생각하기 시작했다. □1761년 이탈리아의 해부학자 모르가니가 '질병의 장소와 원인'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이 책에서 그는 700여회에 이르는 부검 경험과 그 환자들이 살아 있을 때의 증상들을 연계시켜 둘 사이의 관련성을 규명해냈다. 이는 해부병리학의 기반이 됐다. □1910년 미국인 내과의사 리처드 캐봇이 1,000여회의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밝혀냄으로써 의사의 약 40%가 환자의 질병에 대해 오진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업적은 기존 의학지식의 오류를 바로잡고 질병진단 기술을 발전시키는 토대로 작용했다. □1987년 미국 신시내티 소재 드레이크 메모리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이던 존 파웰이라는 환자가 갑자가 사망했다. 의사들이 부검을 통해 그의 몸에서 청산가리를 발견했는데, 이는 부검의 핵심요소 중 하나인 독물학의 효시가 됐다. 범인으로 밝혀진 간호조무사 도널드 하비는 이 병원에서만 23명의 환자들을 독살한 혐의로 체포됐다. □2005~2007년 첨단 부검기술을 통해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두 개의 불가사의가 해소됐다. 과학자들이 CT 촬영으로 고대 이집트의 투탕카멘과 지난 1991년 발견된 알프스의 얼음인간 외치(Oetzi)의 사인을 밝혀낸 것. 당초 예상과 달리 투탕카멘은 암살이 아닌 다리 부상에 따른 2차 감염 때문에, 5,300년 전 사망한 외치는 동상이 아닌 머리 부상이 사망원인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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