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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오디오는 전자제품이 아닌 축적된 문화의 소산"

오디오파일 김영섭 성균관대 교수<br>과거 명연주 완벽한 재현은 단순한 음이 아닌 정신의 구현<br>그래서 아날로그를 고집합니다




"오디오는 전자제품이 아닌 축적된 문화의 소산" [리빙 앤 조이] 오디오파일 김영섭 성균관대 교수과거 명연주 완벽한 재현은 단순한 음이 아닌 정신의 구현그래서 아날로그를 고집합니다 우현석 기자 hnskwoo@sed.co.kr ◇ 약력 ▦1950 목포 출생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졸 ▦1982 건축문화설계연구소 설립 ▦서울시 디자인위원회 부위원장 ▦김수근 건축상 ▦세계건축가 1000명 인명사전 등재 ▦명동성당 성음악위원장 ▦현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건축가가 어쩌다 오디오 관련 서적을 쓰게 되셨습니까. “내가 오디오를 한다는 소문이 나서 그런지, 그 동안 이것 저것 물어 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새벽 한 시, 두 시에도 지방에서 전화를 걸어 오고…. 그런 분들에게 일일이 대답하기도 번거럽고 해서 책을 쓰게 된거지요.” -책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던데 취재는 도대체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실은 제가 책 욕심이 많아요. 고등학교 때 클래식 기타를 하다가 70년대 중반 대학을 졸업하고 오디오를 시작했어요. 청계천 헌 책방에서 오래된 음악서적을 뒤지다가 일본의 전문잡지인 ‘스테레오 사운드’과월호를 발견했지요. 그걸 보고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일본어로 쓴 책이라 구미의 오디오 문화를 파악할 수는 없어 궁금증이 커져 갔어요. 그러다 70년대 후반이 돼서야 해외로 처음 나가게 됐는데 미국에 ‘스테레오파일’이란 잡지가 있길래 그걸 가끔 구해다 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일본 책과 비교해 보니 차이가 많더라고요. 나라 마다 성향이 달랐던 거지요. 그 때부터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 돌아다니면서 각각 그 나라의 문화적 다양성에 맞는 오디오 문화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러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리는 어떤걸까?’하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돼서 공부를 하기 시작한 거지요.” 그는 대답을 하면서 와디아 CD플레이어에 그레고리안 성가 음반을 올려 놓았다. 디지털 신호는 매킨토시MC275 앰프에서 증폭돼 TAD 레이오디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와 방안을 채웠다. -오디오 룸이 대단한 데 어떻게 꾸미신건가요. “내가 건축을 하다 보니까 국내외의 명사를 많이 알게 됐고, 또 그 분들 중에는 음악가도 있었는데 이 방에서 자기 연주를 듣고 ‘다른 어떤 곳에서 듣는 것 보다 좋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아마도 모니터링이 정확했기 때문일 거예요. 성악가, 연주자, 방송관계자 같은 분들이 오셔서 룸 튜닝을 함께 하고 의견을 교환했어요. 동호인들도 많이 다녀갔지만 연주자하고 토론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이탈리아 성 마르코 성당의 성(聖)음악위원을 맡고 있는 리니오 부르토메소(Rinio Bruttomesso) 베니스대학 교수가 한국에 자주 오는 이유는 이 방에서 음악을 듣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 양반이 시노폴리(Giuseppe Sinopoli, 이탈리아의 지휘자 1946.11.2~2001.4.20)하고 이웃에 살았데요. 이 방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여기서 시노폴리를 듣다니…” 하고 눈물을 글썽거리더군요.” -사람들이 오디오에 빠져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디오의 세계는 실연(實演) 보다 많은 로망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 이유는 우리가 마음대로 메이크업(Make up)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일본에서는 오디오 파일들을 ‘레코드 연주가’라고 하기도 합니다. 파일들은 음원 소스를 활용해 라이브 음악 보다 더 생생한 음악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지요. 그러기 위해선 관련 지식체계가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저도 그래서 음향 물리학을 공부하기도 했어요. 그 런 작업의 일환으로 ‘빌딩포뮤직’(Building for music)이라는 책을 번역하기도 했고요. 그 책을 번역하면서 음향공간의 크기나 소재 구조에 관한 많은 지식을 얻었어요. 그 것으로 이 방의 높이와 폭의 비례도 구현한 거지요. 이 방은 작지만 큰 홀의 톤(Tone)이 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이 방에서는 베를린 필의 울림을 느낄 수도 있어요. 자 저기를 보세요. 장전축 위에 턴테이블이 있지요. 오디오 마니아라면 ‘진동이 생길 텐데 누가 무식하게 장전축 위에 턴테이블을 올려 놓냐?’고 할겁니다. 하지만 소리는 울림과 진동 요소가 미묘하게 상관작용을 해서 만들어집니다. 진동을 배제한 소리가 반드시 좋은 건 아니라는 거죠. 우리가 극장에서 연주를 들을 때도 진동은 어느 정도 있고, 그 진동은 소리와 합쳐져 귀에 전달됩니다.” -선생님께서는 스스로를 ‘아날로그 레코드와 진공관이라는 소자를 이용한 증폭장치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고픈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주리라는 생각을 신앙처럼 믿으며 살아온 사람’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궁극의 사운드에 도달하기 위해 아날로그를 선택하신 셈인데, 과연 디지털에 비해 아날로그가 사운드적으로 우위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모든 아날로그 기기가 디지털에 비해 우수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날로그 악기에서 나는 소리를 디지털로 재생하는 것이 실상 아닌가요?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전자오르간으로 흉내를 내는 게 현실이란 말입니다. 디지털의 목표는 최상의 아날로그 소리입니다.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재현의 수단이 아닙니까? 저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기기를 모두 사용하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아날로그가 우위에 있다고 봅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음을 디지털 기기로 재현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나는 가급적 디지털로 제작한건 디지털기기로 듣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이상하게도 디지털 시대에는 명연주가 안 나오는 것 같습니다. 영ㆍ정조때 대학자들이 배출됐던 것 처럼 지난 60년대에는 엄청난 스타 연주자들이 명멸했습니다. 음악은 인간의 삶을 반추하는 건데 전쟁이나 기아를 겪으며 명곡을 연주했던 그 사람들의 음악을 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겁니다. 그 것은 단순한 음의 구현이 아닌 정신의 구현이기 때문입니다. 음반업체 데카(Decca)의 황금시대인 1958~62년은 LP의 전성기였습니다. 나는 그 때 녹음한 음반은 아날로그 시스템으로 재생하는 것이 옳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때는 당대 최고를 만들겠다는 스피릿(Spirit)이 있었습니다만 요새는 돈 벌겠다는 생각이 앞서 음반을 제조(Manufacture) 개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오디오 파일들은 대부분 나이를 먹을수록 빈티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트렌드가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빈티지가 다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람이 나이가 들면 청력이 약해져 고역의 경우 13,000㎐이상은 듣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날카로운 소리가 싫어지니까 상대적으로 저역의 울림이 용이한 빈티지가 좋아질 수는 있겠지요. 저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리얼리티와 로망이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빈티지에는 콘스트럭션(Construction)의 아름다움과 노스탤지어(Nostalgia)가 있습니다. 괴테의 말 처럼 아름다움은 시와 진실 사이에 있는 것 같습니다. 시쳇말로 여자가 다 벗으면 섹시함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오디오 파일들의 기기 섭렵을 백안시 하는 이들 중에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해 보면 실제로 기기의 성능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같은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금 전에 기기에 따라 달라지는 음색을 들어보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음에 대한 훈련이 안돼 있는 사람들의 얘기예요.” -‘오디오의 유산’ 첫 부분에 미국의 여성 성악가 베니타 발렌티의 LP판을 구하기 위해 고생한 사연을 쓰셨습니다. 가장 좋아하시는 음악은 뭔가요. “마테 수난곡을 가장 많이 듣습니다. 마테 수난곡을 연주한 모든 디스크를 모으겠다고 결심했는데 멩헬베르흐(Willem Mengelberg, 1871.3.28~1951 네덜란드의 지휘자)초판 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40장 정도를 모았습니다. 김수창 신부의 감수를 받아서 한국어 번역도 내가 처음 했고요. -그런 음악을 저렴한 오디오, 또는 세팅이 제대로 안된 시스템으로 들으면 느낌이 어떻습니까. “공간이 안 떠오르거나 가수가 눈앞에 서 있다는 느낌이 안 들면 세팅이 제대로 안 된겁니다. 아무리 싸구려라도 정위(定位: location)는 맞출 수 있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돈이 없어서 좋은 소리를 구현하지 못한다고 할 때 마다 내가 저기 있는 싸구려로 스피커로 입증을 해줍니다.” 김교수가 한 쪽 구석에 있는 볼 품 없는 스피커를 보며 말했다. -“오디오와 음악은 저렴하게 즐기는게 좋다.”고 하셨는데 현실적으로 콘서트를 찾아다니고,음반을 구입하고, 오디오를 세팅하려면 경제적 부담이 큰 게 사실입니다. 저렴하게 오디오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자기 형편에 맞게 하는거지요 뭐. 하지만 저는 돈이 있으면 최고를 맛 보길 권합니다. 누구든 최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을 이용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극한으로 가 보라는 거지요. 하지만 그 것을 위해서 모든 걸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디오를 구입하거나, 설치할 때 ‘이 것 만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 뭔가요. “전원과 전압입니다. 기본적으로 진공관은 전압 증폭장치이기 때문에 전압이 풍부하지 않으면 소리가 제대로 날 리 없습니다. 100만원짜리 전원 코드를 사는 사람도 있는 데 그건 어리석은 짓 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전원 코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집으로 들어오기 전의 전선은 어떻게 할겁니까. 하지만 집안의 전원을 조절하는 장치는 큰 돈을 들이지 않고 만들 수 있습니다. 접지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초보자나 오디오 파일들에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반드시 임피던스(교류 회로에서 전류가 흐르기 힘든 정도) 같은 기기 환경을 체크하고, 확인하라는 겁니다. 단순히 앰프 하나에 스피커 하나를 울리는 사람은 필요 없지만, 여러 기기를 맞물려 사용(dividing)하는 사람은 반드시 체크 해야 합니다. 가끔 보면 아마추어들이 프로용 600Ω짜리 기기를 구입해서 가정용 기기에 연결하는데 그러면 이상한 소리가 나잖아요.” -그럼 요새 주로 사용하시는 오디오는 어떤 기종입니까. “TAD, 자이스 이콘을 많이 듣고, 길에서 주어 온 스피커를 조합해서 듣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교육시키기 위해서지요. 장전축에서 떼어 낸 스피커로도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어요.” -아직도 더 써보고 싶은 기계가 있으세요. “없어요. 지금 가지고 있는 기계로도 더 발전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엔지니어의 소양은 물론이고, 음악가적 소양도 있는 엔지니어가 만든 기기를 듣고 싶긴 하지요.” -우리 나라 전자산업 수준은 세계 정상급이면서 명품 음향기기가 없는 이유는 뭘까요. “음향기기는 단순한 전자제품이 아니라 축적된 문화의 소산이기 때문이에요. 비엔나 어쿠스틱스(Vienna Acoustics)같은 작은 회사가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어 내는 반면 LG나 삼성이 못 만드는 것은 그 때문이지요. 특히 스피커의 유닛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이 기회를 통해서 국내 전자 업체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우리 나라의 TV제조 기술은 세계 최고입니다. 이제 좋은 화면을 보게 됐으니 좋은 음질에 대한 요구가 생기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우리도 음향의 산업화에 나서야 할 때에요. 삼성이든 LG등 고화질에 걸 맞는 고음질이 없으면 경쟁력 확보는 어려울 거에요. 이제는 TV음향의 개선에 나서야 할 때라는 거지요. 원가 절감 요인이 생겼다면 그 차이 만큼 음향을 보강해서 불루오션을 개척해야 합니다.” 김교수와 인터뷰가 끝나자 ‘도대체 김교수의 부인은 어떤 사람일까’하는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생겼다. 대부분 오디오 파일의 부인들은 두 부류인데 첫 번째는 아직 덜 지친 탓에 남편의 오디오 바꿈질에 잔 소리를 해대는 축과 자포자기 상태로 남편을 방치하는 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피와 과일을 가져온 부인 조향승씨를 붙들고 인터뷰를 청했더니 손사레를 치면서 도망가고 말았다. 그래도 포기가 아쉬웠던 기자는 다음 날 집으로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받아 내고야 말았다. -책에 보면 김교수님께서 한 달 월급이 11만4,000원이었던 시절에 수입 레코드 서른 다섯장을 외상으로 사 들고 와서 집장만을 위해 부은 곗돈 50만원을 거기에 썼다고 하시던데 그 때 심정이 어땠습니까. “당시 화곡동 아파트 13평짜리 한 채 값이 180만원이었어요. 저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는데 황당했지요. 그 돈으로 레코드 판을 산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어요. 하지만 워낙 음악을 좋아했고, 너무 갖고 싶어 하는게 눈에 보여서 양보하자고 생각 했어요. 그러다 평생을 양보하면서 살게 된거지요.” -김교수님께서 오래 된 텔레푼켄 장전축을 들여 놓을 때 “저 궁상 맞은 시앗(첩) 만큼은 정말 집에 못들여 놔요. 다시 엿장수를 줘 버리든가, 어디로 치우든가 하세요.”라고 화를 내셨다던데 다른 오디오에는 관대하셨던 분께서 왜 그러셨나요. “그건 고물상에서 주워 온 거에요. 얼마나 지저분하고 엉망이었는지…. ‘어떻게 저런 것 까지 들여올 생각을 했을까. 참, 너무하다’ 싶었어요. 그런데 그 이가 전축을 뜯어 보여 주면서 ‘겉을 보지 말고 속을 보라’고 했어요. 워낙 설득을 잘해서 내가 넘어갔지요.” -사모님께서 빈티지 오디오의 속을 보면 뭐가 뭔지 아십니까. “왜 몰라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나도 케이블 바뀌면 주파수 체크 하는 수준은 돼요” 이 정도면 부창부수(夫唱婦隨)에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사모님께서는 ‘김교수님의 본처가 레복스 스피커’라고 하신다는데 그러면 사모님과 김교수님의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아! 그거요. 레복스는 제일 처음에 들여온 스피커라서 그렇게 부르는 거지요. 소리가 너무 좋기도 하고요. 보통 오디오 하는 사람들이 바꾸기를 잘 하잖아요. 좋은 소리가 날 때까지 케이블도 바꾸고, 앰프도 바꾸고, 돈을 적게 들이면서 좋은 소리를 내보려고 바꾸는데 우리 집에는 쉽게 들여오지도 않지만 쉽게 내보내지도 않아요. 리복스는 처음에 들어온 거라서 내치지 않으려고 해요. 보통 새로운 기기가 들어오면 있던 것에 소홀해 지는게 사람 마음이 잖아요. 그래서 내가 ‘본처한테 소홀히 하면 안된다’고 한 것을 책에다 쓴 거예요.” -그 동안 김교수님의 오디오 편력을 어떻게 참고 사셨나요. “그 시절에는 수입 레코드 판이 엄청 비쌌어요. 그 때 오디오 마니아들은 집에서는 구입 가격에 0을 하나 빼고 말했는데, 우리 남편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이 대목에서 기자는 ‘과연 이 주장이 사실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디오 구경 다닐 때 항상 같이 다녔어요. 그 사람은 설득은 했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았어요.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는게 즐거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래서 아예 같이 하게 된거죠. 해외 가서도 숍에 한번 들어가면 시간 가는 줄을 몰라서 ‘아예 헤어진 후 몇시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기도 해요.” -책을 읽어보면 가족들도 이미 김교수님께 물이 들어서 모두 오디오 파일들이 된 것 같은데 맞습니까. “애들이 아들 하나에 딸 둘인데 어려서부터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났어요. 큰 애는 얼마 전에 ‘생일 선물로 뭐해줄까?’라고 물어봤더니 ‘음반을 사달라’고 하더라고요. 아마 어렸을 때부터 들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어요. 이번에 책을 낼 때도 큰 애가 자료를 찾고, 사진도 찍고 많이 도와 줬어요. 요새는 남편이 ‘레코드로 보는 미술사’를 집필하고 있는데 우리 애가 아르바이트로 도와주고 있어요. 그 애가 유럽여행을 갔을 때 미술관에 가서 음반 재킷으로 보던 그림을 실제로 보니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하더라고요.” 통화를 끝내자 김교수의 부인 조향승씨는 “내가 말한 것 그대로 쓰면 창피하니 잘 다듬어서 써주세요.”라며 “호호”웃었다. 우記者의 log 人 글로 밥을 벌어 먹고 살면서 대충 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기자는 글을 쓰기 전에 취재원에 대해 나름대로 준비를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건축가이자 성균관대학교 교수인 김영섭을 만나러 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기사가 다른 신문들 보다 늦어지더라도 그가 새로 펴낸 책 '오디오의 유산'(A Heritage of Audio)을 읽고 난 다음에야 인터뷰를 하겠다고 작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취재에 앞서 그의 책을 읽으면서 기자 자신에 대해 가졌던 그런 믿음은 깨져 버렸다. 행간에 다져진 취재의 밀도와 책의 완성도에 기가 질려 버렸기 때문이다. 오디오에 관한 지식이 일천한 기자는 그래서 나름대로 고수라고 생각하는 임훈구 소년한국일보 편집부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리 둘은 김영섭 교수에게 물어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질문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댔지만 결국, 도달한 결론은 "이 양반은 우리하고는 노는 물이 다르니 그냥 마음을 비우고 만나자"였다. 결국 우리는 한 수 배우러 가기로 하고, 꼬리를 내린 채 계동에 자리 잡고 있는 그의 한옥 대문을 두드렸다. 인터뷰는 그의 한옥 지하에 빈티지 오디오와 각종 음반으로 빽빽이 채워진 리스닝룸에서 진행됐다. • 야구야, 노올~자! • 빅 리거… 미국인 감독… 볼거리 '풍성' • '야구의 꽃' 치어리더 • "마운드 배영수·류현진이 호령할 것" • 화상 후 신체기능 장애 초기 재활치료해야 • 어깨 빠진적 있다면 '재발성 탈구' 의심을 • "오디오는 축적된 문화의 소산" • 운전자 천국 제주 드라이브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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