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뚝심 없는 부총리

지난 10월28일 국회 대정부 질문.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발언에는 사뭇 준엄함마저 풍겨나왔다. “출산장려 문제는 앞으로 국가 발전의 운명이 걸려 있는 만큼 이를 포함한 저출산 목적세 신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한 부총리의 발언은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열린우리당 고위 인사들이 ‘세목 신설ㆍ증세 불가’ 방침을 연이어 밝히고 나선 와중에 나온 그의 발언에서 국민들은 오랜만에 심지 굳은 경제수장의 모습을 보았다. 부총리를 너무나 믿었을까. 아니면 그사이 부총리의 철학이 바뀐 것일까. 9일 방송기자 클럽 초청회에 나선 그의 발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할 정도로 변해 있었다. 그는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세금을 늘린다는 결정을 한 적은 없다. 앞으로 4~5년간 증세를 할 필요성은 없다”고 말했다. 재경부 주무 국장은 “ 일반적인 재정수요의 문제를 언급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발언을 듣던 사람들의 표정은 달랐다. 그들에게 부총리의 발언은 “참여정부 임기 내에 세금 신설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곧 저출산 목적세는 물 건너갔다는 뜻으로 이어졌다. 물론 부총리는 굳이 증세 없이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묘안을 그사이 만들었을지 모른다. 이틀 전 열린우리당 인사의 말처럼 교통세의 세율을 낮춰 저출산 목적세로 전환해 국민에게 세금을 추가로 늘리지 않도록 하는 방식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이는 결국 아랫돌 빼 윗돌 괴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저출산 문제가 미래 세대를 위한 절체절명의 사회적 명제라면서 고작 생각한 게 이런 땜질식 아이디어인가. 한 부총리는 취임 이후 자신만의 색깔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써왔다. 그런 면에서 저출산대책은 8ㆍ31부동산대책 이후 모처럼 찾은 명쾌한 어젠다였다. 부총리가 정말로 국가의 명운을 내걸고 저출산대책을 만들고 싶다면 정치적 색채부터 과감하게 벗어던지는 것이 시급하지 않을까. 시장은 그런 부총리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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