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생활속 거품을 더 걷어내자(사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흥청거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과소비·호화사치 풍조라는 말도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다. 올들어 심화된 경기불황속에서도 흥청거림은 여전하다. 우리사회의 의식구조가 어느샌가 「먹고 놀고 쓰자」판으로 바뀌었다. 허리띠를 바짝 더 졸라매야할 처지에 샴페인이나 터뜨리고 있으니 실로 위기다.대한상공회의소는 며칠전 「우리 경제·사회의 거품」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리의 소비행태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경고하고 있다. 버는 것은 선진국보다 적은데 쓰는 것은 너무 헤프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국내총생산(GDP)대비 에너지 소비량은 일본의 1천달러당 0.09톤에 비해 4.1배나 많은 0.37톤에 달한다. GDP대비 1인당 연간 외식비 비중은 한국(4.9%)이 일본(4%), 미국(3%)보다 높다. 땅값 거품도 심하다. 전국토의 지가는 한국이 GDP의 5배, 일본이 3.9배, 미국이 0.7배다. 기업의 거품도 만만치 않다. 종업원중 임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한국이 0.1∼0.25%, 일본이 0.03%, 미국이 0.05%다. 노조전임자 1명당 종업원수는 한국이 1백83명, 일본이 6백명, 미국이 1천3백명이다. 종업원 1인당 제조업의 연간 생산액은 한국이 11만달러, 일본이 20만달러, 미국이 16만달러다. 일상생활속의 거품은 한층 심각하다. 승용차의 연간 주행거리는 우리가 2만3천㎞인데 비해 일본 1만2천㎞, 미국 1만4천7백㎞다. 신차 사용기간은 미국(8.5년)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4년이다. 도대체 어느 한 분야라도 비교가 되질 않는다. 우리가 버려야 할 고비용 저효율이 사회구석구석에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고서도 국제사회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대한상의는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각 분야에서 거품이 조금씩 빠지고 있는 추세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거품빼기는 아직도 멀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들어 한보에 이어 삼미·진로·대농 등이 쓰러지거나 부도유예협약 대상으로 지정됐다. 기아사태가 질질 끌면서 협력업체의 부도가 속출하고 있다. 실업자도 증가세다. 올들어 매월 13만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반면 고용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경제는 정치논리에 밀려 실종상태다. 9월의 외환대란설도 심상치만은 않다. 사회학자들 가운데서는 불황속의 이같은 이상소비행태를 「실망 소비」의 하나로 설명한다. 더 이상 바라볼 것이 없고, 출구가 막힌 상황속에서 사람들은 가진 것을 다 털어내 먹고 마시는데 쓴다는 것이다. 마치 세기말적인 현상이다. 더 이상 먹고 놀고 쓰는데 정신이 팔려서는 안된다. 그것이 「실망 소비」라면 한층 그렇다. 선진국은 벌써부터 21세기를 준비하고 있다는데 우리는 아직도 과거속에 살고 있다. 한번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다. 배고픔의 정신으로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살려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