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선급금'의 달콤한 유혹…너도나도 '덤핑 수주' 뛰어들어

■ 공공 '최저가 낙찰제' 부실 부른다<br>당장 자금압박 피하고 추후 설계변경 기대도<br>발주처가 공사특성 따라 최적방식 선택케 해야

최저가입찰제 확대는 민간 건설경기 침체와 맞물려 건설업체들을 출혈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공사 예정가의 60%선에 낙찰된 4대강 살리기의 한 공사 현장.



"돈 안되는 공사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기로 유명한 대형 S사마저 최근에는 최저가 출혈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견 건설업체 A사의 수주담당 임원은 "지난 4~5년간 주택사업에서 돈을 벌고 최저가 공사로는 현장과 장비를 유지해왔다"며 "최근 주택경기 침체로 자금압박을 받는 업체들이 늘다 보니 덤핑 수주가 잇따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건물을 거의 반값에 지어주겠다는 제안은 누구에게나 솔깃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제안은 의심해볼 수밖에 없을 만큼 파격적이다. 공사비 자체가 애초부터 잘못 산정된 게 아니라면 결과는 둘 중 하나다.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고 짓거나 아니면 건축주를 속여 싸구려 건물을 짓는 것이다. 최근 공공공사 비중이 높았던 중견 건설사의 잇따른 부도, 부산의 이른바 '쓰레기 임대아파트' 논란은 '최저가낙찰제'가 갖는 이 같은 문제점이 표면화된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 ◇무한 '출혈경쟁'에 노출된 공공공사=대형 건설사인 D사는 최근 조달청이 발주한 두 건의 항만공사를 잇따라 따냈다. 그런데 두 건의 공사 낙찰률을 보면 각각 63%, 60%다. 이 회사의 저가 낙찰 사례는 최근 최저가 입찰을 통해 발주된 공공공사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난다. 이 같은 저가 낙찰이 확산되면서 이르면 2~3년 내에 저가 낙찰이 결국 건설업계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위기감을 낳고 있다. 정부의 중점 추진사업인 4대강 사업에서부터 이 같은 위기가 촉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발주된 4대강 살리기 사업 최저가 공사의 평균 낙찰률은 64% 수준이다. 심지어 일부 공구는 낙찰률이 50% 초반으로 사실상 반값 공사다. 중견 건설사 D사의 현장임원은 "무리한 저가 수주는 결국 하도급 업체나 현장 일용직 근로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대형 건설업체들마저 저가 낙찰에 가세하는 분위기다. 대안입찰형(턴키) 공사의 발주 비중이 점점 줄어들면서 중견ㆍ중소업체 영역으로 여겨졌던 최저가입찰 시장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최저가입찰제 공사규모는 2005년 5조9,990억원에서 2009년 22조3,160억원 수준으로 4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선급금ㆍ설계변경의 유혹=건설업계가 출혈을 감소하면서까지 최저가 공사에 뛰어드는 것은 '선급금' 에 대한 유혹 때문이다. 중견업체인 C사의 토목담당 임원은 "300억원짜리 공사를 따내면 100억원 정도를 선급금으로 받을 수 있다"며 "당장 급한 회사는 직원들 월급을 주고 현장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수주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최저가 입찰 확대와 주택경기 침체가 맞물리면서 건설사들을 덤핑 수주 시장으로 내모는 상황인 셈이다. 최저가입찰제가 정부의 의욕만큼 예산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반론이 제기된다. 한 시민단체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A광역자치단체와 일선 지자체가 2002~2006년 5년간 발주한 공사에서 이뤄진 설계변경 건수가 무려 1만1,086건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공사금액도 불어났다. H사의 한 관계자는 "업체들이 저가에 공사를 수주하는 배경에는 나중에 설계변경을 통해 공사비를 현실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전한다. 이복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최저가낙찰제로 발주된 공사도 준공단계에서는 대부분 최초 발주처가 제시한 예정가격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예산절감은 발주 단계에서 나타난 반짝 효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제도에 집착하기보다 운영의 묘를 살려야=지난해 10월 한국노총은 대한건설협회에 면담을 요청했다. 대형 건설업체를 대표하는 협회와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총의 만남은 다소 이례적이었다. 이 자리에서 두 단체는 최저가낙찰제가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만들고 부실시공을 유발하며 외국인 인력 대체 등으로 국내 노동자들의 설자리를 잃게 만든다는 문제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미 오는 2012년부터 최저가낙찰제를 현행 300억원 이상 공사에서 100억원 이상 공사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와 함께 저가 입찰 업체를 자동으로 탈락시키는 현행 최저가 심사방식 대신 자동탈락 없이 최저가 입찰자 순으로 주관적 심사를 실시해 낙찰자를 선정하는 심사방식으로 제도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건설업계는 이 같은 심사방식이 도입될 경우 낙찰률이 최소 10∼20%포인트 이상 추가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 상황이 더욱 악화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보다 유연한 태도로 제도운영의 묘를 살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턴키입찰=담합' '최저가 입찰=덤핑'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발주처가 공사의 특성을 감안해 최적의 입찰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