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주객전도

“규제를 풀어 금융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새 정부의 기본방침에 정면으로 반하며 정치논리가 금융정책을 지배해서는 금융 선진화는 요원하다.” 지난 21일 서울 명동의 은행연합회회관. 강정원 국민은행장 등 15개 은행 대표는 이른 아침부터 모여 정치권의 4단계 방카슈랑스(방카) 도입 연기 방침에 대해 긴급회의를 진행했다. “4단계 방카슈랑스를 일단 중지하겠다는 정치권의 조치는 환영하지만 35만명의 보험 노동자가 생존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은 ‘중지’가 아닌 ‘철회’뿐이다.” 은행장들의 성명서가 나오자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는 즉각 반박 입장을 발표했다. 보험사 사장들도 23일 긴급회의를 열어 대응전략을 논의할 예정이다. 은행 창구에서 자동차보험과 종신보험까지 팔 수 있는 방카슈랑스 4단계 확대 시행을 둘러싸고 은행권과 보험업계가 헤게모니(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겉으로는 ‘금융산업의 균형적 발전’ 등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자신들의 이권을 끝없이 확대하려는 ‘밥그릇’ 싸움으로 이전투구(泥田鬪狗)나 다름없다. 더욱이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표심(票心)공략’까지 맞물리면서 방카슈랑스 시행이 정치적 공방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가장 중요한 ‘소비자’가 배제돼 있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방카슈랑스 시행 주도권이 어디에 있느냐보다는 소비자가 좀더 편리하게 금융상품을 고르고 그 상품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데 있다. 당초 방카슈랑스 도입은 은행의 보험상품 판매를 통해 고객들이 좀 더 쉽게 은행에서 은행과 보험의 서비스를 받고 보험료도 더 낮추기 위한 취지였다. 현재의 방카슈랑스 논쟁은 ‘소비자를 외면한 힘겨루기’로 비쳐진다. 한 대학교수는 최근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은행과 보험업계는 소비자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며 “금융시장이 불안한데 자신들의 영역만 확대하려는 극도의 조직 이기주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은행과 보험업계가 곱씹어봐야 할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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