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외화내빈(外華內貧)

지난 97년 개관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물 전체를 은빛 스테인리스로 건축한 초현대식 건물이다. 공업 도시였던 빌바오는 이 건물 하나로 스페인의 대표적인 예술의 도시, 관광의 명소로 탈바꿈했다. 2002년 가을 이곳을 찾았을 때 1층의 넓은 홀은 거대한 설치미술작품이, 3층의 3분의2는 독일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인 빔 벤더스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나머지 3분의1의 전시공간은 인상파 화가 중심의 소장미술품 전시가 개최 중이었고 2층 전시실은 수리 중이었다. 밖과 안의 식당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지만 전시장 안에는 소장품 전시실에만 관람객이 있을 뿐 비교적 한산했다. 사실상 다른 미술관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현대미술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내부의 철근 구조물과 특히 비구상조각을 보는 듯한 건물의 외형은 매료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미국 LA에 들렀을 때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설계비만 5,000만달러, 건축비는 2억7,400만달러를 투입해 지난해 10월23일 개관한 이 음악당은 핀 떨어지는 소리가 전 좌석에 들릴 정도여서 `음향시설이 너무나 완벽해 좀 부담스럽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지난해 말 다시 찾아 막상 안에 들어가보니 외형의 화려함과는 달리 비효용 공간이 너무 많은 게 눈에 띄었다. 콘서트 홀을 제외하고는 내부의 로비공간도 좁았고, 특히 각층의 화장실이 협소했다. 캐나다 태생의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두 작품을 보면서 `외화내빈`을 생각해본다. 겉과 속이 다를 때 누구든 실망과 좌절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제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다. 외화내빈, 과대포장, 속 빈 강정을 골라내는 일은 유권자의 몫이다. 그보다 새해를 맞으면서 나 자신이 외화내빈만을 추구해온 것은 아니었는지 자성해본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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