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오페라로 정서적 웰빙을


"밥 보다 비싼 쓴 물을 왜 마시는가?" 북한 새터민들이 한국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으며 던졌던 첫 질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피 체인점에서 커피와 함께 그 공간만의 문화를 즐기는 것이 익숙해진 우리에게는 이 질문 자체가 생소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는 새터민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색한 그 문화를 이미 익숙하게 즐기고 있는 것이다. 외국에 비해 더 비싼 고가의 커피체인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이제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문화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릴때부터 공연 관람 권해야 비싼 커피를 즐기듯이 비싼 오페라를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우리나라에 자리 잡기 위해서 어떤 조건이 선행돼야 하느냐는 문제는 나와 같은 오페라 가수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이다. 문화는 반드시 학습과정을 거쳐 습득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먼저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우리나라 아이들의 교육에서 창의력 교육, 현장학습, 체험학습, 감성지수(EQ) 향상 등과 같은 말은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다. 그런데 그 아이들에게 단체로 오페라 공연을 보여준다면 어떻게 될까? 필자가 솔리스트로 있던 독일 라이프치히 국립극장에서는 매달 세 번째 토요일에 어린이만을 위한 공연을 열어 문화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발레ㆍ오케스트라ㆍ오페라 등 공연의 수준과 내용면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전혀 차이 없는 공연을 어린이들에게 똑같이 제공하는 것이다. 처음에 그 무대에 서게 되었을 때 '과연 어린이들이 두 세시간 동안이나 계속되는 공연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어린이들의 관람 태도는 너무나도 성숙했고 심지어 공연 그 자체에 완전히 몰입하여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오페라는 어려운 것이고 전문가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오페라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가리는 편견일 뿐이다. 오페라의 세계는 실로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오페라의 매력을 마음껏 누리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하고 풍성한 오페라를 맛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에게 인상 깊은 기억이 하나 있다. 라이프치히의 거대한 '아우구스트광장'에서는 매년 극장 개관 행사로 세계적인 성악가들과 상임지휘자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무료 야외공연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열리고 콘서트도 무료로 공개된다. 매년 수준 높은 공연을 믿기지 않는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이 행사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이 독일 전국뿐 아니라 전 유럽에서 라이프치히로 모여든다. 클래식 음악이 일반 대중의 삶 속에 녹아있는, 음악인으로서 참으로 부러운 모습이다. 국민영웅 박지성이 활약하는 영국에서는 구단에서 시즌 전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시즌 이용권을 판매한다. 축구팬이라면 매우 고가에도 불구하고 구입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소리의 향연속으로 라이프치히 시내 백화점 한 매장 여직원이 지나가는 나를 조심스레 불러 세워 내 이름을 확인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이 라이프치히 국립극장 연회원이며, 그 회원권 가격이 자신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싸다는 것과 자신이 한번도 빠짐없이 모든 오페라 공연을 즐기고 있다는 것, 내 공연에 큰 감동을 받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다. 오페라는 아름다운 소리의 풍성한 향연이다. 그런데 그 향연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은 설레는 마음으로 좌석을 가득 채우는 관객들이다. 우리는 가치 있는 일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이제 우리의 '웰빙'은 몸을 넘어 정신을 향해 가야 한다. 몸을 위해 좋은 음식이 필요하듯, 정서를 위해 좋은 음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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